♡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아름다운친구 2007. 5. 12. 07:03

2007년 5월 12일 토요일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5:15-16)

  예수님은 한창 바쁘던 때 하던 일을 마다하고 홀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져서 예수님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낫기 위해서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급히 해야 할 일을 마다하고 예수님은 물러가셨다고 합니다. 보통 결심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몰려오는데 휴가를 떠나는 직장인이 상상이 되십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급하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기도를 하신 것은 기도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일’이 중요하고 급한 데도 그 일을 마다하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선순위에 있어서 앞선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예수님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는 ‘일’과 대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다가 시간이 남으면 기도하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럼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합니까?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업무 전에 일찍 출근하여 기도할 수 있고 일을 하다가도 사무실에서 급한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일터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예수님처럼 바쁜 일상생활의 현장을 떠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리트릿(retreat)입니다.


일하면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기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기도하며 일하게 하옵소서. 노동이 곧 기도이고 기도가 곧 노동임을 삶을 통해 보이기 원합니다.
By 방선기 목사

2007년 5월 12일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5

 

예수님의 눈물은 오늘까지도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입으로는 진리를 설교하고 행위로는 이단적인 삶을 사는 나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분은 그분이 아주 사모하는 신부(新婦), 그러나 너무나 자주 낙심하고 때로는 무정(無情)한 신부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생명 대신 죽음을, 따뜻한 가정 대신 멋진 저택을, 깨끗한 마음 대신 깨끗한 공기를 선택하는 지역 사회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물질적 소유를 얻었지만 대신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외계(外界)의 먼 곳까지 발견하고 이해하지만 자신의 내면에는 무관심한 사람들, 질병을 극복했지만 편견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일회용 기저귀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버리는 윤리의식 밖에 갖지 못한 세대(世代)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더 빠른 모뎀(modem)을 갖고도 대화에는 게으른 사람들, 신종(新種) 레저 개발에는 능하지만 정말 즐겁게 놀 줄 모르는 사람들, 전문가를 더 많이 배출했지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들을 당신도 마음 아파하십시오. 눈물을 흘리십시오.

  T.S.엘리어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황무지는 저 먼 남쪽의 열대지방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무지는 단지 저기 동네 어귀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무지는 당신을 밀치며 지하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황무지는 당신의 형제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1-44

~에 관하여
주제어 :
2006-05-12

 

 

내가 신학교에 와서 배운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것들이었다.

 

물론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때로는 오히려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이나, 알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도 알게 된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 것은

 

내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분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시는지,

 

그분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원하시는지...

 

정말 귀하고 감격적인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에 관하여 아는 정도라도 몸둘 바를 모를 정도일텐데

 

하나님께서 더럽고 추악한 나를 아신다는 것이다.

 

깊이... 아주 깊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