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숲을 거닐며 25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파랑새’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믿을 수만 있다면-
조신권(연세대 명예교수/총신대 초빙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듯이 해가 높이 떠도 눈을 감고 있으면 어두운 밤과 같다. 청명한 날에도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기분은 비 오는 날 같이 침침하다. 사람은 그 마음의 눈을 뜨지 않고, 그 마음의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언제나 불행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당신 마음의 눈이 바뀌었을 뿐이에요. 이제야 참된 행복이 보일 거예요.” “아니, 저것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로구나. 우리는 아주 멀리 가서 찾았지만 사실은 여기 있었구나.”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중에서
위 명문은 벨기에의 귀족이자 시인이며 노밸 문학상 수상자였던 유명한 동극작가 모리스 폴리도르 마리 베르나르 마테를링크(Maurice Polydore Marie Bernard Maeterlinck, 1862- 1949) 백작의 동극(童劇) <파랑새>라는 작품에서 가져온 몇 구절들이다. 먼저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부터 살펴보겠다.
마테를링크의 생애와 작품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1862년에 벨기에 켄트의 프랑스어권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창시절 시와 단편들을 썼으나, 뒤에 다 없애고 지금은 몇 편만이 남아있다. 그는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겐트의 자연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어가 모국어였고 가정교사에게 영어와 독일어를 배웠으며 8살 때 셰익스피어를 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7년 동안의 생트 바르브(Sainte-Barbe) 기숙학교 생활을 했는데 그에게는 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생트 바르브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였으나 글쓰기를 계속하였고, 당시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실었던 <젊은 벨기에>(La Jeune Belgique)에 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겐트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마친 뒤, 그는 프랑스의 파리 시에서 몇 개월을 보냈다. 그는 그 곳에서 새로운 상징주의운동을 펼치는 몇몇 구성원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는 마테를링크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테를링크가 변호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든 것은 몇 달 동안의 파리 체류(1885년 가을-1886년 봄)와 그곳에서 만난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Adam)의 영향 때문이었다. 특히 빌리에와의 만남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고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빌리에를 통해 그는 신비와 운명과 저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말렌 공주․멜리장드․아스톨렌 같은 인물들은 빌리에와의 만남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같은 시기에 그는 14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신비주의자 뤼스브루크(Ruysbroeck)를 알게 되었고, 또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상징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노발리스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후에 이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 1886년 3월 마테를링크는 파리에서 만난 젊은 시인들과 함께 잡지 『라 플레이아드』(La Pléiade)를 창간하였고, 여기에 자신의 첫 산문 작품인 『무고한 자들의 학살』(1886)을 발표한다. 이것은 플랑드르 출신 화가인 브뢰겔(Breughel)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또 파리에 체류하며 쓴 일련의 시를 모아 『온실』(1889)을 발표하는데 그는 이 시집이 베를렌, 랭보, 라포르그, 휘트먼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어 그의 첫 희곡 『말렌 공주』(1889)를 발표하였으며, 이어서 『침입자』(1890), 『맹인들』(1890), 『펠리아스와 멜리장드』(1892), 『알라딘과 팔로미드』(1894), 『실내』(1894), 『틴타질르의 죽음』(1894) 등 자연주의 연극의 반동(反動)이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말의 신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896년에는 수필집 『빈자의 보물』을 발표하였고, 1908년 스타니슬랍스키가 연출한 『파랑새』(L'Oiseau bleu) 공연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어 191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마테를링크는 87세를 일기로 1949년에 소천 하였다.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이른바 ‘정적 연극’(靜的演劇:static theatre)을 목표로 한 극작가였다. ‘정적 연극’이란, 예컨대 의자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노인이라 해도, 그가 주변에 있는 모든 신비적인 힘이나 행위를 감각한다고 하면, 그쪽이 애인의 목을 졸라 죽이는 사나이나 승리를 외치는 병사보다도 진실한 인간적 생명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침입자』를 비롯해서 그의 모든 극작품들은 이런 정적 연극 이론에 충실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파랑새’는 내 안에
어떤 사람은 행복이란 하늘 위에 걸린 무지개와 같아서 그 영롱하고 찬란한 빛깔이 사람을 유도하지만 정작 손에는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칼 붓세 같은 독일의 시인은 행복이 산 너머 먼 곳에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지만 그곳에도 행복은 없었다고 노래하였다.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아! 벗 따라 찾아갔었네./허나 눈물만 흘리고 되돌아 왔다네./산 너머 저쪽 더 멀리/행복은 있다고들 말하지만. -칼 붓세의 “산 너머 저쪽” 전문 목표는 결코 일조일석에 달성되는 것이 아니요 만리장성도 한 밤에 쌓을 수는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묘목이 정정한 거목이 되려면 숫한 풍상 속에 긴 세월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로마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영락없는 거짓말이다. 그런 허장성세와 허풍과 허언을 믿으면 십리도 못 가서 발 병 나고 만다. 행복도 거산(巨山)과 같은 것으로만 치부하고 목숨을 걸고 올라가려면 풍지박산(風地雹散)나게 된다. 무엇이나 귀하고 소중한 것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큰 것은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믿고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이어가면 반드시 큰 것도 이룰 수 있고 천리 아니 만리도 갈 수 있다. 산속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실낱같은 샘물은 나무 잎사귀 하나를 떠내려 보낼 힘도 없지만, 이 샘물줄기가 수 없이 한 방울에 집중되면 바위를 부수는 큰 폭포수가 되고, 커다란 배가 오락가락 하는 일대 장강을 이루게도 된다. 꿈은 커야하지만 그 실천의 길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으며 자기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찾아내 한 순간 한 순간을 차곡차곡 그것으로 채워 넣어야 진정한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그것을 믿지 않고 거산준봉만 오르거나 전혀 엉뚱한 곳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벨기에의 동극작가 마테를링크의 유명한 동극 ‘파랑새’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 동극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가난한 나무꾼의 자녀인 치루치루와 미치루 남매가 꿈을 꾸는데, 그 꿈에 요술 할머니가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가난한 어린남매를 그 파랑새를 찾으면 자신의 집도 부자가 되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파랑새를 찾아 나섰다. 남매는 파랑새를 찾아 죽음의 나라를 두루 살피고, 또 과거의 먼 나라를 방황하며 다녔다. 그러나 파랑새를 찾지 못한 남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자기 집 문에 매달린 새장 안에 ‘행복’과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테를링크는 이 동극을 통하여 행복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행복이 멀리에 있는 줄만 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만 벗어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행복이 철철 넘쳐날 줄 기대하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탈피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에서 뽑은 명문에 나타난 대로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듯이 해가 높이 떠도 눈을 감고 있으면 어두운 밤과 같다. 청명한 날에도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기분은 비 오는 날 같이 침침하다. 사람은 그 마음의 눈을 뜨지 않고, 그 마음의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언제나 불행하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 시인은 ‘1%의 행복’을 노래하게 된 모양이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불행 49% 행복 51%면/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행복의 조건엔/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행복한 겁니다./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약간의 좋은 것으로 얼른 채워 넣어/다시 행복의 무게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약간의 좋은 것 1%/우리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아주 소소한 것일 수 도 있습니다./기도할 때의 평화로움/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감미로운 음악 숲과 하늘과 안개와 별/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또 불행하게 합니다./나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웃으며 대답 했습니다. /행복하다고.” 나는 이 눈이 성해서 이런 해맑은 살맛나게 하는 시 한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을 비운 채 흘려보내지 말고 작은 ‘시와 노래 및 그림’ 한편, ‘보람’하나, ‘섬김’ 하나, ‘돌봄’ 하나, ‘행복’ 하나로 채워나가면 나중엔 행복의 장강이 되어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의 뱃놀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강력한 무기와 군사를 가지고도 악한 환경과 군대를 가진 월맹을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꿍아’(함께 먹고), ‘꿍안’(함께 즐기고), ‘꿍땀’(함께 일하는) 때문이라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함께 먹고 즐기며 일하며 똘똘 뭉쳐 하나가 되었기에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있어줄’ 친구 동반자가 있으면 ‘힘들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며’, ‘넘어져도 일어날’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어 늘 생각해주고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보듬어주고 함께 있어 손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파랑새 증후군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병적인 증세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파랑새증후군(Bluebird Syndrome)이다. 파랑새증후군은 지금 자신이 처한 어렵고 힘든 형편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허황된 꿈만 바라보며 일확천금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을 파랑새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위에서 이미 소개한 벨기에의 극작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라는 동극 때문이다. 파랑새 증후군의 증세를 우리는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친한 모 대학 후배 교수로부터 이런 얘기를 하면서 요즘 파랑새증후군이 심각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토익점수도 좋고, 또 각종 스펙도 가지고 는 있지만 대기업 취업의 관문을 뚫어내지 못한 김모씨라는 분이 있단다. 그 후 몇 차례 대기업에 입사에 낙방을 한 김모씨는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였다. 희망도 있고 건실한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김모씨는 중소기업을 다닌다는 것이 창피하고 또 만족이 없어서 결국 얼마를 다니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옮기었다. 그리고 다른 중소기업에 입사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은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하여 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디를 가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회사만을 찾고 있는 김모씨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김모씨가 파랑새증후군이라면 우리 주변에도 파랑새증후군으로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고는 있지만 일을 하면서도 만족하질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파랑새증후군이다. 또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다른 배우자를 만났으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텐데 하는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파랑새증후군에 빠진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파랑새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도외시 하지 말고 협력하고 소통하며 함께 가야만 한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위협적인 동물은 의외로 개미라고 한다. 개미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게 되면 그 길이가 무려 수 킬러 미터나 된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밀림의 맹수들은 개미 떼를 보게 되면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숲으로 도망친단다.몸 집이 큰 코끼리나, 민첩하고 용맹스러운 사자도 도망친다는 것이다. 수십만 마리의 개미떼가 몰려들어 몸을 뜯어먹기 시작하면 어느 동물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맹수들이 개미들을 무서워하는 것은 개미가 힘이 강한 존재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개미가 가지고 있는 강한 협동심 때문인 것이다. 개미는 아주 작은 벌레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뭉치는 힘이 결국 밀림의 강적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찰스 램이란 영국의 유명한 수필가가 있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인도에 있는 한 상사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일을 하다 보니, 마음대로 작가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불만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 출근한 날, 평소에 그의 생각을 알고 있던 여 사무원이 “선생님, 명예로운 정년퇴직을 축하합니다. 이제 밤에만 쓰던 작품을 낮에도 쓰시게 되었으니, 작품이 더욱 빛나겠네요”라고 말하였다. 그는 “고마워요. 햇빛을 보고 쓰는 글이니 별빛을 보고 쓴 글보다는 빛이 날건 당연한 일이지”하고 말 한 후 사장을 만나 인사하곤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말았다. 그는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 기뻤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그는 정년퇴직 축하인사를 해 주었던 여사무원에게 “사람이 하는 일 없이 한가한 것이 일이 너무 많아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것보다 얼마나 못 견딜 노릇인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할 일없이 빈둥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학대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아가씨는 부디 내 이 말을 가슴에 잘 새겨 언제나 보람 있는 바쁜 나날을 꾸며가기 바랍니다.-찰스 램으로부터.” 찰스 램도 일종의 ‘파랑새 작가증후군’ 환자였다. 그러나 직장을 떠나는 것으로 보람과 행복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감동할 만한 일과 보람을 찾고, 주어진 일에 몰입하여 이루어내는 것으로써 만족하며 그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이 파랑새증후군을 앓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파랑새’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믿기만 한다면 태양은 다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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