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숲을 거닐며 24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별빛이 사라지기 전에” -사랑의 자력을 일으키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조신권(연세대 명예교수/총신대 초빙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1) 별빛이 사라지기 전에,/겨울의 아침이 밝기 전에,/첫 닭이 울기 전에,/예수 그리스도는 나셨느니라. 그 곳은 마구간,/구유는 요람,/자기 손으로 만든 세상에/한 나그네인생으로 태어나셨나니라. 2) 제사장도 왕도 깊이 잠들어 누워 있는/예루살렘에서,/젊은이도 늙은이도 깊이 잠들어 누워 있는/만원을 이룬 베들레헴에서/성자도, 천사도, 소도, 나귀도,/모두 함께 지켜 보았느니라,/겨울철/그리스도 탄생의 그 새벽에. 3) 엄마 품에 안겨/추운 마구간에 뉘인 예수,/그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양 무리의 목자시니라./성모 마리아와 함께,/허리 굽고 백발이 성성한 요셉과 함께,/성자와 천사, 황소와 나귀와 함께,/우리도 무릎 꿇고 모두 함께 기쁨으로 영광의 왕을 맞이하자. -“별빛이 사라지기 전에” 1) Before the palling of the stars,/Before the winter morn,/Before the earliest cockcrow,/Jesus Christ was born;/Born in a stable,/Cradled in a manger,/In the world His hands had made/Born a stranger. 2) Priest and king lay fast asleep/In Jerusalem,/Young and old lay fast asleep /In crowded Bethlehem/Saint and Angel, ox and ass/Kept a watch together, /Before the Christmas daybreak/In the winter weather. 3) Jesus on His Mother's breast/In the stable cold,/Spotless Lamb of God was He,/Shepherd of the fold:/Let us kneel with Mary Maid,/With Joseph bent and hoary,/With Saint and Angel, ox and ass,/To hail the King of Glory. -Before the Palling of the Stars
위에 소개된 시는 19세기 영국 전기라파엘파의 여류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Rossetti, 1830-1894)의 크리스마스 송가다. 많은 크리스마스 송가가 있지만 로제티의 것만큼 소박하면서도 감명스러운 것은 없다. 먼저 그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고찰해 보겠다.
로제티의 생애와 작품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1830년에 런던에서 2남 2녀의 막내로 출생했다. 그녀는 소녀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 그녀의 부친은 그녀가 열 살 때부터 병에 걸려 십 여 년 투병생활을 하다 퇴직했는데, 이로써 어린 크리스티나는 어머니와 함께 탁아소를 하는 등 계속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녀는 아주 예쁜 편은 아니지만 매력 있는 용모였는데 불행히도 14세부터 질병(후두염, 결핵, 신경통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크리스티나는 두 차례 약혼을 했으나 20세가 되기 직전, 당시 약혼자인 화가 제임스 콜린슨이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한 이유로 파혼했고, 30세가 넘어서 사귄 두 번째 약혼자 찰스 카레이와도 그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일곱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뒷날 화가가 된 오빠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그림 모델이었으며, 18세 때 오빠의 친구들이 발행하는 잡지에 시를 발표함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31세에 『악귀시장과 다른 시들』(Goblin Market and Other Poems)이라는 첫 시집을 출간했다. 여류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 별세하고 난 직후에 나온 이 시집으로 크리스티나는 여류시인으로서 대중들의 시선을 끌게 되었다. 『악귀시장』은 전체적으로는 동요 리듬이지만, 일종의 장시로서 두 자매가 악귀들에 의해 불운을 겪는다는 난해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그 후로 그녀는 주로 신앙시와 동시만 지었다. 오빠 가브리엘 로제티가 주도한 ‘전기라파엘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자장(磁場) 안에서 그녀는 정교한 운율법과 온아한 정감으로 중세풍의 신비적ㆍ종교적 분위기의 시를 썼다. 전기라파엘파는 1848년 가브리엘 로제티, 윌리엄 헌트, 존 에버릿 밀레이 등의 화가들이 만든 결사(結社)의 이름인데, 이 모임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일어난 미술과 문학 분야의 운동을 뜻하기도 한다. 전기라파엘파는 당시 영국의 예술이 라파엘로 이후의 대가(大家)양식을 모방한 맥 빠진 예술이라고 진단하고,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 자연주의적인 정신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티나는 여성 참정권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으나 시 속에 페미니즘 요소가 흐르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녀는 전쟁, 노예제도, 동물학대, 미성년 매춘을 반대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시인으로서의 크리스티나는 20세기 초 모더니즘에 가려 있었으나, 1970년대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약혼자 카레이와 헤어진 1866년 이후 이웃을 위해 속죄하는 훌륭한 삶을 살았다. 신경통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고 오빠 단테가 쓰러져 10년 간 누워 있다가 사망한 이후 12년간은 침묵의 삶을 살고, 이윽고 1894년에 64세로 소천 하였다. 로제티가 남긴 시집으로는 『악귀시장과 다른 시들』이외에도 『왕자의 행렬과 다른 시들』(The Prince's Progress and Other Poems, 1866), 『비망록』(Commonplace, 1870), 『노래: 전승동요집』(Sing-Song: a Nursery Rhyme Book 1872, 1893), 『한 가장행렬과 다른 시들』(A Pageant and Other Poems, 1881), 『시들』 (Verses, 1893), 『새시들』(New Poems, 1895), 그리고 『오르막길』 (Uphill, 1887) 등이 있다.
자력을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명문에로 초대된 크리스티나의 시는 삭막하고 삭풍만 나무 끝에 불어대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첫 닭이 울기 전 이른 새벽에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말구유를 요람으로 나그네 인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 양 무리의 목자, 영광의 왕으로 맞이하자는 것이다. 예수가 나신 때는 오늘날보다 더 영적으로 혼탁하고 세속화되어서 새로운 별의 등장을 보고도 깨달음이 없이 잠만 자는 아주 어두운 암흑시대였다. 그리스도의 강탄을 지켜본 것은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나 돈 있고 집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자와 천사들, 소와 나귀들과 같은 순수한 영적 존재와 거짓 없고 가식 없는 자연뿐이었다. 신실한 신자들과 꾸밈없는 자연에게 시인은 성모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무릎 꿇고 경건한 기쁨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자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이 약동하는 여름이나 청명한 하늘을 자랑하는 가을에 태어나질 않으시고 아주 쓸쓸하고 적막한 겨울에 오셨다. 그것도 저 높은 하늘나라를 떠나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고 이 낮은 곳으로 오셨다. 그것이 곧 아낌없이 주시고자 하시는 희생적인 사랑의 힘이요 자력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이런 자력적인 사랑만이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이솝의 우화를 읽다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했는데, 그 이야기는 가난한 소녀 피골라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주인공 소녀 피골라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너무나 가난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피골라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오늘밤 우리 집에 오실까요?” 엄마는 시름과 근심에 찬 얼굴로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아마 못 오실 것 같구나. 하지만 내년에는 꼭 오실거야.” 그래도 피골라는 작은 나무구두를 벗어 굴뚝 밑에 놓았다. 그날 밤, 눈 폭풍 속에 날개가 부러진 작은 새 한 마리가 피골라의 집 굴뚝으로 떨어졌다. 작은 새는 피골라의 나무 구두 속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구두 속에 아무것도 넣지 못한 엄마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피골라가 얼마나 실망할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피골라의 나무 구두 속에 넣어줄 만한 선물이 없었다. 피골라는 일어나자마자 굴뚝 밑으로 갔다. 그리고 잔뜩 부푼 마음으로 구두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 구두 속에는 날개가 부러진 작은 새가 있었다. 피골라는 감격해 떨 듯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것 봐요!” 피골라는 구두를 들고 엄마에게 뛰어갔다. “거 봐요. 산타 할아버지가 날 잊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예쁜 새를 선물로 주셨어요. 다쳤으니까 내가 잘 돌봐 줄 거예요.” 날개가 부러져 다친 작은 새 한 마리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피골라는 다친 작은 새를 따뜻하게 돌봐 주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을 했다. 상처 입고 다쳐서 생명이 위독한 인간을 그대로 놔 둘 수가 없어서 세상으로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폭발적인 사랑의 자력에 비견할 수 있는 작은 사랑 이야기다. 이런 사랑 이야기가 있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날개 다친 작은 새와 같은 우리 인생들도 따뜻한 손길을 통해 낳음을 받고 새로운 희망을 품고 새벽이 와도 지지 않는 한 별을 바라다보며 다시 오시는 이를 기쁘게 맞으며 힘찬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성탄 선물
크리스마스 계절이면 많이 읽는 작품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이 작품은 미국의 단편작가 오 헨리(O Henry, 1862-1910)가 쓴 아주 짧은 소설이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 짐과 델라라는 아주 가난한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도시 중심가에 찬란한 조명등과 장식들이 등장하고 쇼 윈도에는 화려하게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추리가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가슴 설레게 하는 풍경 탓이었는지, 젊은 부부 짐과 델라는 각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델라가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는 1달러 87센트뿐이었다. 그녀는 시계 줄이 없는 회중시계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남편에게 시계 줄을 사주는 것이 가장 귀한 선물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계 줄도 괜찮다 싶은 것은 20달러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델라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살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그녀는 그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팔기로 작정하였다. 긴 머리카락을 팔아 준비한 돈을 가지고 시계 줄을 샀다. 마침내 성탄의 밤이 되었다. 이 가난한 두 젊은 부부는 한 자리에 마주 앉아 가슴 설레며 선물을 풀었다. 먼저 스카프로 머리를 두른 델라는 시계 줄을 짐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순간 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델라에게 선물을 사주려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던 회중시계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짐은 시계를 판돈으로 머리 빗을 샀다. 스카프를 벗긴 순간 짐은 두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델라의 긴 머리칼이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 그들은 가슴으로 뜨겁게 서로 포옹하였다. 각 자 선물은 필요 없게 되었지만, 그들의 선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선물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맑고 깨끗한 마음과 순결한 사랑의 선물로서 실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짐과 델라의 선물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다. 허나 저 하늘을 버리시고 이 세상 낮은 곳까지 찾아오셔서 목숨까지 내 주신 그 사랑의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이었다. 육체는 촛불의 심지고 영은 거기서 타오르는 불빛이므로 절대로 심지 없이 빛이 타오를 수가 없다. 그만큼 육체는 소중하다. 그렇게 소중한 육체를 상처 입은 작은 한 마리 새와 같은 나를 위하여 내어 주심으로써 촛불을 켜주신 주님을 닮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한 현대 작가는 오늘의 크리스마스를 이런 이야기로 풍자하였다. 이글(Eagle)이란 화려한 백화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값비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고 혈안이 되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군중이 사라진 다음 카운터 앞에는 30대 청년이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어 있었다. 옷은 남루하고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신분증도 없었다. 그런데 그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이 풍자가 시사 하는 바는, 우리 인간의 이기주의는 이웃을 희생하고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토스토에프스키의 『백치』(Idiot)라는 작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스크바에 ‘장군’으로 불리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유형장과 감옥을 돌아보며 살았습니다. 노인은 죄수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 앞에 멈춰 서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누구에게도 훈시 따위는 거의 한 적이 없었습니다. 노인은 모든 죄수들을 ‘다정한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노인은 돈을 주기도 했고, 감옥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이따금은 성경도 가지고 갔습니다. 글을 깨우친 죄수들이 유형 길에 그 성경을 읽을 것이고, 또 글을 모르는 동료들에게도 읽어 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죄수에게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물어보는 경우는 드물었고, 죄수가 자기 죄에 관해 먼저 말을 꺼냈을 때만 들어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는 죄수들을 친형제처럼 대했지만, 나중에 죄수들은 그를 아버지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애를 안고 있는 여자 유형수가 눈에 띌 대면 다가가서 어린애를 어루만져주고, 그 어린애한테 웃어보라고 손가락을 딱딱 튀겨 보이기도 했습니다. 시베리아 유형자에는 어른들을 열둘이나 죽이고 여섯 명의 아이를 찔러 죽인 살인자가 있었습니다. 20년을 그곳에서 보낸 그는 어느 날 엉뚱하게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 장군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묻습니다. “당신은 그 흉악범이 20년 동안 잊지 못 했던 장군 할아버지가 그 자의 영혼에 어떤 씨앗을 뿌려놓았는지 알겠어요?” 그 노인은 사랑의 씨앗을 죄수들의 마음속에다 뿌려 놓은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선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자력’이 없으니까 세상은 등을 돌려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위한 값비싼 선물을 사려고 혈안이 되어 북새통을 이루며 힘없는 이웃을 마구 짓밟고 있다. 사랑의 심지에 불을 붙일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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