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싸우는 거 아니면 예쁘게 말해야지!”

아름다운친구 2007. 5. 3. 06:32

2007년 5월 3일 목요일
“싸우는 거 아니면 예쁘게 말해야지!”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잠언 18:15)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화를 낼 때도 있고 서로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의 말씀 속에, 아내나 남편의 말 속에, 자녀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있습니다. 그 말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제 딸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니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아이들도 옆에 함께 앉아 있을 때 저와 아내가 마음이 맞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누다가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소리를 낮추려고 했지만 조금씩 흥분하면서 목소리를 높여갔는데 아이들이 긴장하는 눈치가 보였습니다. 여덟 살 아들이 주뼛주뼛 눈치를 보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 싸우지 마.” 그러자 제가 “싸우는 거 아니야. 그냥 이야기하는 거야. 너희는 싸울 때 치고 받고 하잖아. 아빠 엄마가 지금 그러니? 그러니까 싸우는 거 아니지?”라고 하면서 큰 아이한테 쏘아붙였습니다. 그러자 여섯 살 박이 딸이 또박또박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싸우는 거 아니면 예쁘게 말해야지!” 그렇게 딸에게 한대 맞고는 그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연습을 하면 좋습니다. 하나님이 가족을 통해서만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가까운 가족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다보면 일상의 영성에 대해서 새로운 안목이 열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족들을 통해, 또한 직장의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옵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By 원용일 목사

2007년 5월 3일
주님의 눈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 23:37

 

베다니에서 출발하여 산을 넘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십시오. 그분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격정(激情)에 사로잡히십니다. 그 격정은 그분을 압도합니다. 그분을 압도하는 격정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축구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보다 더 강하게 우리를 사로잡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되셨기 때문에 주님은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셨을 때 우시며 탄식하셨습니다(눅 19:41-44). 주로 자기들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던 이기적인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이 병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분이 우시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위해 울지 않으시고, 앞으로 사람들에게 일어날 무서운 일들 때문에 우셨습니다. 그분이 우실 때에 예루살렘에 살고있던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 후 40년이 못되어 예루살렘이 약탈당하고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닥칠 일을 생각하시며 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괴로워하시는 그 분의 모습만큼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너희가 하나님께 돌이키기만 하면 그 누구도 앞으로 일어날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그녀의 자녀에게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하고 싶어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당신이 현재 있는 곳에서 빛과 소금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그분께 기도하십시오.

이해못 할 욕심
주제어 :
2006-05-03

 

 

지난 어린이 주일에 섬기는 교회에서 어린이 잔치를 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후원 물품이 들어와 풍성하게 나눌 수 있는 잔치였다.

후원 물품 중에는 어린이 티셔츠가 있었는데,

어떤 경우, 아이한테 맞지도 않을 것을 받아 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결국 자신의 아이에게 맞지도 않아 쓸모 없이 되어버릴 것을

왜 그리 욕심내며 먼저 가져가려고 하는 건지...

 

사실 알고보면 단지 그들만의 모습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그런 모습들이 있다.

만약 내게 감당 못할 큰 돈이, 높은 지위와 명성이 온다면

나는 과연 그것을 덥썩 물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똑같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큰 돈, 명성과 지위가 온다면 나는

감당 못할 것을 알면서도 덥썩 물고 말 것이다

 

이해 못할 것은 내 생명을 살리지도 못할 이 따위 것들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는데

왜 정작 내 생명을 살리는 복음,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복음, 단지 내가 불쌍해서 예비하신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왜 욕심 내지 않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