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숲을 거닐며 - 7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바른 사표와 전범을 세우고 본받아야!
-나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
조 신 권(연세대 명예교수/총신대 초빙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어네스트는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은 사상과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다. 그의 사상은 일상생활과 조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실성과 깊이가 있었다. 이 설교자가 하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활의 말이었다. 선행(善行)과 성애(聖愛)의 생활이 그 속에 융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귀중한 말에는 청순하고 풍성한 진주가 용해되어 있었다. 시인은 경청하면서 어네스트의 생활과 인격은 자기가 지금까지 쓴 어떤 시보다도 고귀한 한 개의 시라고 느꼈다. 그의 눈은 눈물로 반짝이고, 이 훌륭한 사람을 우러러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백발의 화려한 빛을 그 둘레에 풍기는 온화하고 다정스럽고 사려 깊은 얼굴만큼, 예언자와 현인(賢人)에 어울리는 용모는 여태껏 없었다고 생각했다. 저쪽 멀리, 그러나 뚜렷이 황금빛 석양빛을 받아 높다랗게 큰 바위 얼굴이 보였다. 그 둘레에 낀 흰 안개는 어네스트의 이마를 덮고 있는 백발과도 같았다. 그 장엄한 자비로운 모습은 온 세상을 포옹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 바야흐로 말하려는 사상에 공감하여 어네스트의 얼굴은 장엄한 표정을 띠고 자애로움이 얼굴 가득히 물들었다. 시인은 저항할 수 없는 충동으로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소리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네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그리고 깊은 통찰력을 가진 시인의 말이 사실인 것을 알았다. 예언은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어네스트는 할 말을 마치자 시인의 팔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자기 자신보다 더 현명하고 선량한 큰 바위 얼굴과 닮은 사람이 멀지 않아 곧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여전히 희망하면서.
Ernest began to speak, giving to the people of what was in his heart and mind. His words had power, because they accorded with his thoughts; and his thoughts had reality and depth, because they harmonized with the life which he had always lived. It was not mere breath that this preacher uttered; they were the words of life, because a life of good deeds and holy love was melted into them. Pearls, pure and rich, had been dissolved into this precious draught. The poet, as he listened, felt that the being and character of Ernest were a nobler strain of poetry than he had ever written. His eyes glistening with tears, he gazed reverentially at the venerable man, and said within himself that never was there an aspect so worthy of a prophet and a sage as that mild, sweet, thoughtful countenance, with the glory of white hair diffused about it. At a distance, but distinctly to be seen, high up in the golden light of the setting sun, appeared the Great Stone Face, with hoary mists around it, like the white hairs around the brow of Ernest. Its look of grand beneficence seemed to embrace the world. At the moment, in sympathy with a thought which he was about to utter, the face of Ernest assumed a grandeur of expression, so imbued with benevolence, that the poet, by an irresistible impulse, threw his arms aloft and shouted--"Behold! Behold! Ernest is himself the likeness of the Great Stone Face!" Then all the people looked, and saw that what the deep-sighted poet said was true. The prophecy was fulfilled. But Ernest, having finished what he had to say, took the poet's arm, and walked slowly homeward, still hoping that some wise and better man than himself would by and by appear, bearing a resemblance the Great Stone Face.
위에 인용한 명문은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내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64)이 쓴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진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의 종결부분이다.
내새니얼 호손의 생애와 작품
호손은 1804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영국에서 건너온 아메리카 식민지 초기의 이주민이다. 초기 청교도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준엄한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2대 존 호손은 17세기 말 세일럼을 중심하여 행하여진 유명한 “마녀재판”의 냉혹가열(冷酷苛烈)한 판사로서 19인의 마녀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의 판결에 따라 처형된 한 마녀가 호손가에 대하여 이렇게 저주하였다. “하나님이 그에게 피를 마시게 하실 것이다.” 이 말은 호손가의 기억에 어두운 오점을 남겨주었고 내새니얼 호손은 이런 저주가 이제 자기에게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호손은 해양 선박의 선장이었던 아버지가 1808년에 열대병으로 사망한 후, 과부가 된 어머니와 함께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드문 고립 속에서 자랐다. 11세 때에 그들은 메인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그는 보든(Bowdoin) 대학에 다녔으며, 다수의 중요한 친구들을 오랫동안 사귀게 되었다. 그 중에는 시인이며 학자인 롱펠로와 훗날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1825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호손은 세일럼으로 돌아와. 작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단편소설과 역사적 소재의 단문을 쓰기 시작했다. 1828년에 자신의 대학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 ?팬쇼?(Fanshawe)를 익명으로 자비 출판하였다. 그 책은 다만 하찮은 비판적 반응을 받았을 뿐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창피함을 느낀 작자는 팔리지 않고 남아있던 책을 전부 불태워 버렸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호손은 출판업자 굿리치와 오랜 시기에 걸친 생산적인 우정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단편소설의 창작으로 되돌아갔으며, 역사적 소재의 우화적 이야기를 통하여, 뉴잉글랜드 지역 사람들이 겪은 가혹한 청교도적 행동에 대한 충격과 양심의 가책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의 다수는 굿리치 출판사가 연초에 발행하는 기증본인 ?기념품?(The Token)이란 책에 포함되었다가, 1839년에 ?두 번 듣는 이야기?(The Twice-told Tale)라는 제목의 단편집에 수록되었고, 그것은 1842년 증보 출판되었다.
그 후 호손은 1836년부터 굿리치 출판사의 편집인 겸 품팔이 작가로 일하다가 1839년에 보스턴 세관의 조사관 직위를 얻었다. 그러던 중 보스턴 문학계 인사들과의 접촉으로 인하여 1841년에 그는 그 자리를 사직하고, 부룩 농장(Brook Farm)에서의 공동생활 실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해에 그는 초절주의 운동의 적극적인 동참자인 소피아 피바디와 결혼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사교성 없는 호손은 그런 공동생활에 실망하고, 1842년에 아내와 함께 콩코드로 이사하여, 과거에 에머슨이 살았던 낡은 집에 살았다.
단편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한 후 1846년에 “젊은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이라는 빼어난 단편이 들어 있는 ?오랜 가문 출신의 모세?(Moses from an Old House)를 써서 출판했고, 1850년에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를 출판했으며, 그 이듬해에는 ?일곱 개의 박공이 있는 집?(The House of Seven Gables, 1851)를 내놓았다. 그리고 1854년에는 ?브라이드데일 로맨스?(The Blithedale Romance)를, 1851년에는 ?눈사람과 다른 이야기들?(The Snow Image and Other Tales)를 출판하였다.
1853년에 피어스(Franklin Pierce)가 대통령이 되자, 그의 선거용 전기를 써 주었던 호손은 영국 리버풀 주재의 미국 영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영국에서 4년, 이탈리아에서 2년 살다가 1860년에 귀국하여 그의 마지막 소설 ?대리석 목신상?(The Marble Faun)를 발표하였다. 그는 왕년의 창작력을 발휘하여 좋은 작품을 더 쓰고자 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864년에 사망한 뒤에 미완성 소설 4편이 발견되어 출판되었는데, 대부분 앞뒤가 맞지 않는 그 소설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셉티무스 펠턴 혹은 생의 정수?(Septimus Felton, Or the Elixir of Life, 1872), ?돌리버 로맨스?(The Dolliver Romance, 1876), ?그림쇼 박사의 비밀?(Dr. Grimshwe's Secret, 1882), ?선조의 발자취?(The Ancestral Footstep, 1883). 그의 최후의 출판물은 ?우리들의 오랜 가문의 집?(Our Old Home, 1863)이란 제목의 영국에 대한 수상록과 ?어틀랜틱 먼스리?(The Atlantic Monthly)에 발표한 각종 글들이다.
1864년 5월에 전 대통령이었던 친구 피어스를 따라 뉴햄프셔로 여행을 떠났는데, 프리마스 호텔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앨콧, 에머슨, 필즈, 롱펠로와 로웰 등에 운구 되어 콩코드에 있는 슬리피 할로우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큰 바위 얼굴』의 줄거리
미국의 어떤 마을에 어네스트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에 큰 바위 산이 있었다. 그 산의 바위는 마치 지혜롭고 인자한 사람의 얼굴같이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 큰 바위 얼굴은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던지는 것 같았다.
그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늘 평화롭고 유복했다. 그것은 큰 바위의 얼굴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었다. 남북전쟁 직후, 어네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傳說)을 들었다. 어네스트도 큰 바위 얼굴을 스승으로 여기며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며 바르게 자랐다. 또한 어네스트는 오래 동안 그런 전설상의 인물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어네스트가 젊은 청년이 되었을 때, 엄청난 부자인 개더골드 씨가 나타났다. 개더골드 씨도 이 마을 출신이어서 모두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칭송했지만, 그런 열기가 가라앉자 그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유명한 장군인 올드 블러드 앤 썬더 씨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또 이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칭송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네스트가 중년이 되었을 때 말잘 하는 정치인이 나타났지만 그도 아니었다. 이어서 어네스트를 감동시킨 시를 지은 시인이 나타나 어네스트와 친구가 되었는데, 어네스트는 그 시인이 큰 바위 얼굴이라고 생각했으나, 시인은 그 유명한 큰 바위 얼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 바로 어네스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네스트는 어느새 청년기를 거쳐 중년이 되고 이젠 노년이 되었다. 어네스트는 그 바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나도 저런 얼굴이 한번 되어 보았으면”, 그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생을 지냈다. 어네스트는 인생의 지혜와 체험이 깊은 현인이 되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도 받았다. 어느 날 그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인생의 지혜를 강론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네스트의 얼굴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이 그 큰 바위의 얼굴과 똑 같았기 때문이다.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사람이 이 마을에 나타난다는 그 전설상의 인물은 바로 다름 아닌 어네스트 자신이었다. 사실 어네스트는 진실 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나눔, 사랑을 실천하였다.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은 어네스트였던 것이다. 사람들도 드디어 예언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어네스트는 미래엔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나올 것을 희망한다. 호손의 이 소설은 하나의 허구지만 깊은 진리를 우리에게 시사해준다.
큰 바위 얼굴을 사표로 삼고 본받아 산 어네스트
‘큰 바위 얼굴’은 누군가가 힘들게 만든 조각상이 아닌 자연 그 자체에서 다듬어 지고 깎여서 된 자연작품이다. 그것은 온화하고도 장엄한 모습으로 그 주위에 사는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고 따스함을 주는 그런 존재였다. 나이 어리고, 꿈 많은 어네스트에게는 아주 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모습을 꼭 닮은 그것을 볼 때마다 ‘저것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갔었다. 바위가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의 희망이자 꿈이었던 것 같다. 바윗덩어리 하나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까 싶었지만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것에 대한 ‘예언’ 때문이었다. 그 예언은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했다. 그 내용은 이 근처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어 감에 따라 얼굴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아 간다는 것이다. 자연물의 하나인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나온다니, 어네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예언에 감탄하며 언젠가는 그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참다운 예언은 저주보다는 희망을 예시해준다.
어네스트는 전설대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자라났다. 희망은 인내를 낳는 법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마을에는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도, 유명한 장군도, 말솜씨가 좋은 정치가도, 훌륭한 작품을 쓴 시인도 큰 바위얼굴을 닮지는 않았다. 큰 바위 얼굴과 닮은 사람이란 외모가 닮은 것만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큰 바위 얼굴이 가진 인자함과 다정함, 따뜻한 마음과 지혜, 그리고 겸손과 사랑의 마음, 그리고 자연스러운 야성과 바위와 같은 경고함까지 닮은 것을 뜻하는 것이다.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그 어떤 사람보다 아름답고 훌륭한 인물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네스트처럼 출신은 농부지만 사랑과 고결함을 추구할 뿐 아니라 언행일치 되는 솔선수범을 보여주는 사람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위대한 인간의 가치는 돈, 위압적인 힘,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탐구를 거쳐 얻어진 말과 사상, 생활의 일치와 내면적인 성숙과 아름다움에 있다. 또한 어머니가 들려준 큰 바위 얼굴에 얽힌 예언 이야기를 믿고 그것을 사표로 삼아서 일관되게 사는 믿음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신념과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위대한 힘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놀라운 힘이다. 신념은 꿈과 이상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기적적인 힘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금언은 화란의 시인이요 문필가인 G. 럿셀이 한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꼭 될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 꼭 되고야 만다고 마음속에 간절한 소원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밤낮으로 수양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명언도 있다. 사실상 실패는 우리에게 간절한 염원과 철석같이 굳은 입지가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신념은 나무와 같아서, 수련이나 학습과 같은 정신적인 비료와 일편단심 주를 사모하는 영성 안에서 용솟음치는 심령의 생수를 주지 않으면 고목처럼 시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신념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념을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심고 그 생각에서 굳건한 힘이 생기도록 읽은 책에서 얻은 자양분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관념이나 생각을 반복해서 마음에 심으면, 확고한 신념이 싹터 성장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고 살면 된다.
한두 번의 암시(self-talk)로 신념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어네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늘 바라보며 반드시 그런 인물이 되려고 반복적으로 수련을 쌓고 같은 생각과 관념을 되풀이하다가 그런 인물이 되었듯이, 우리도 이상적인 사표와 전범을 세워서 늘 본받아 살려고 애쓰면 그 전범과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사표와 전범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그분을 본받아 올곧게 살면 이 어려운 세상을 이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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