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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숲을 거닐며 21]-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숲속에서의 생활』

아름다운친구 2013. 4. 30. 07:41

명작의 숲을 거닐며 21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숲속에서의 생활』

-자연 속에서 도시의 건조함과 황폐함을 볼 수만 있다면-

 

조신권(연세대 명예교수/총신대 초빙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자연의 한가운데서 살면서도 자기의 감각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불행이란 존재할 수 없다. 건강하고 순진한 귀에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지 않을 만큼 거센 폭풍도 없다. 내가 사계절과 우정을 즐기고 있는 동안은, 나에게 삶을 무거운 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콩들에게 물을 주고, 나를 집안에 머무르게 만든 이 부드러운 비는 쓸쓸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거니와 나에게는 좋기만 하다. 그 때문에 콩밭을 매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이 밭매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만일 비가 오래 계속 내려 땅속의 종자를 썩게 하고 낮은 지대의 감자들을 망쳐놓더라도, 그 비는 고지의 풀에는 여전히 좋을 것이다. 그리고 풀에게 좋은 것이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 때때로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그들보다 분에 넘치는 신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There can be no unhappiness in him who lives in the middle of Nature and still has his senses. There was never a storm so bad that it was not beautiful music to a healthy and simle ear. As long as I enjoy the friendships of the seasons I am sure that nothing can make life a burden to me. The gentle rain that waters my beans and make me stay in the house tody is not cheerless and unpleasant but good for mr too. Though it prevents me from hoeing my beans, it is of far more worth than the hoeing I might do. If it should continue so long as to ruin the seeds in the ground and destroy the potatoes in the low lands, it would still be good for the grass in the up;ands. And being good for the grass, it would be good for me. Sometimes, when I compare myself with other men, it seems that I am more favored by the gods than they, more than I derserve. -Walden, Living Alone.

위에 든 명문은 오늘날 모든 환경운동과 자연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19세기 미국의 초절주의 시인이요 수필가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rny David Thoreou, 1817-1862)의 수필집『월든: 숲속에서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에 나오는 17편의 주옥같은 수필 가운데 하나인 “고독한 삶”이라는 글의 일절이다. 먼저 소로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살펴보겠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생애와 작품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은 작은 가계를 운영한 상인이었고, 그의 어머니 신시아(Cynthia)는 기숙생들을 돌보아 주고받는 수입으로 가계에 보탬을 준 가정주부였다. 어린 아이 때 소로는 숲이 아름다운 콩코드에서 자랐고 그래머 스쿨에서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 후 1833년으로부터 1837년까지 하버드대학을 다녔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잠깐 콩코드 공립학교에서 가르쳤으나 교육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에 반대하다가 면직 당하였다. 다른 데서 교직 자리를 구하려했으나 구할 수가 없어서 그의 형 존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그는 랄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초절주의를 대변한 문학지인 『다이얼』(The Dial)지에다 수필과 시를 써서 기고하곤 하였다.

1841년에 소로와 그의 형 존은 그들이 열었던 사립학교의 문을 닫았는데, 형의 나빠진 건강 때문이었다. 같은 해에 에머슨은 잡역부로서 자기 집에 와서 같이 지내자고 소로를 초대하였다. 소로는 그 제의를 흠쾌하게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우선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동시에 생활비를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머슨의 집에서 그는 조지 리플리(George Ripley)와 마가렛 풀러(Margaret Fuller)를 비롯한 미국의 아주 유명한 초절주의자들을 만났고, 거기서 힌두교 경전을 공부했으며, 계속적으로『다이얼』지에다 시와 수필을 투고할 수 있었다. 그는 1842년에 그의 형 존이 죽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1844년에 콩코드로 돌아왔고, 1845년에는 에머슨의 소유지였던 월든 폰드(Walden Pond)로 들어가 2년 동안 머물면서 글 쓰는 일에 매진했다.

자비로 출판한 그의 첫 작품이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1849년)이다. 이 작품은 젊어서 세상을 떠난 형과 같이 했던 선상 여행을 정리한 수필집인데, 당시의 사회는 이런 유의 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표작 『월든: 숲속에서의 삶』(1854)은 2년 2개월에 걸쳐서 혼자 한 다양한 숲에서의 생활을 기록 정리한 수필집이며, 그 사상은 이후 시대의 시인과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로의 사후 『메인의 숲』(The Maine Woods, 1864)과 『케이프 콧』(Cape Cod, 1865) 등의 여행기와 자연에 대해 쓴 에세이, 일기, 서간집 등 수많은 작품이 출판되었다. 소로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것이 많고, 자연 문학의 계보로 자리매김이 된다. 그밖에『시민의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 1849),『원칙 없는 삶』(Life Without Principle, 1863) 등이 있으며,『소로의 일기』(Journal)는 그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로는 악화된 결핵으로 결국은 회복하질 못하고 1862년에 콩코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일생은 자연과 인생의 진실에 관한 파악에 바쳐진 과감하고 성스러운 실험의 연속이었고,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항의하기도 하였으며, 인두세 납부 거부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고, 후에는 노예 해방 운동에 헌신하기도 하였다. 그의 그러한 정신은 ‘시민 불복종’ 정신으로 이어진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독립 운동과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 등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

‘뚜렷한 불꽃’에 대한 용서를

 

소로는 주로 수필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시인으로도 꽤 유명하다. 그가 남긴 시 가운데 “연기”(Smoke)라는 짧은 시가 있다. 여기에 ‘뚜렷한 불꽃’이라는 알쏭달쏭한 시구가 나온다. 이 ‘뚜렷한 불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기”라는 그의 시를 먼저 천착할 필요가 있다.

“가벼운 나래의 연기, 이카로스의 새여,/ 너는 너의 높은 비상으로 나래를 녹이누나./ 그들이 둥지를 튼 마을 위를 선회하는/ 노래 없는 종다리, 새벽의 사자/ 또는 떠나는 꿈이며, 치마를 걷어 올리는/ 한밤 환영의 희미한 형체./ 밤에는 별을 가리고 낮에는/ 빛을 흐리고 해를 지워 버리는구나./ 너 내 향이여, 이 난로로 부터 솟아올라/ 신들에게 청하라 이 뚜렷한 불꽃을 용서하시기를.”

“연기”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 시는 월든에서 1846년이나 47년에 쓴 시로 보이는데, 유리 같이 맑고 잔잔한 호수 가에서 이른 아침마다 그의 집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쓴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시라 할 수 있다. 월든 호수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 있는, 수심 31미터, 둘레 2,7 킬로미터 되는 아름다운 숲속 호수다. 소로는 1845년 여름에 시작되는 2년 동안 그 호수의 북쪽 해안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날마다 이른 아침이면, 이 오두막에 있는 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러고 나서 해변으로 나오면 난로에서 나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이 시의 첫줄에 나오는 ‘가벼운 나래의 연기’는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다가 살아지는 연기의 모습을 ‘새’(bird)에다 비유해서 묘사한 것이다. 이 ‘가벼운 나래’라는 말에 대한 연상은 바로 ‘새’와 연결된다. 그 새가 다름 아닌 바로 ‘이카로스의 새’다. 우리가 모두 아는 대로 이카로스는 밀납으로 만들어 붙인 날개를 달고 태양가까이 날아오르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까지 날아올랐다가 그만 밀납 날개가 녹아내려 바다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신화에 나오는 신적인 인간이다.

이 시의 3행에서 ‘연기’는 ‘노래 없는 종다리’로 바뀐다. 종다리는 아침의 파수꾼으로서 둥지를 튼 아주 작은 자기의 마을 위를 빙빙 선회하며 파수를 보고 있다. 종다리는 새벽의 사자로서 좋은 징조를 가져다 줄 듯도 하다. 그러나 소로는 이내 종다리가 전하는 아침의 소식을 ‘떠나는 꿈’ 또는 ‘한밤 환영의 희미한 형체’에다 비유하여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치마’라는 말을 통하여 여성의 존재를 떠오르게 하고 그 여자는『백베스』에 등장하는 마녀와 연결된다. 그 마력적인 ‘연기’는 밤에는 별을 가리고 낮에는 빛을 흐리고 해를 지워버린다. 이는 불길한 징조를 예감하게 만드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영혼의 가장 높은 능력인 이성을 상징하는 ‘불’은 하늘의 것인데 그것을 훔쳐온 즉 왜곡되게 사용한 세상 문명은 마치 올림픽의 성화가 타오르듯이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거기서 나는 연기 즉 문명의 부산물인 기계나 생활기구 등이 인류와 세상을 편의하게 해주긴 하지만, 실은 우리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무력화 시키고 파괴시키는 역작용으로 나타날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마지막 행에서 ‘연기’는 ‘향’이 되고 소로의 난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 된다. 소로는 ‘연기’를 ‘자기의 사자’로 역전시킨 ‘향’을 향해 난로부터 솟아올라 햇빛 보다 더 ‘뚜렷한 불꽃’을 피어오르게 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신들에게 간청케 한다.

이렇게 볼 때 ‘뚜렷한 불꽃’은 인간이 꾀한 고도의 이성 계발과 자연의 정복을 통해 만들어낸 기계문명과 물질문명을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 소로에 따르면, 우리 인간들이 이룩한 계몽과 문명은 우리에게 이성과 과학이라는 ‘찬란하고 뚜렷한 빛’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그 빛이 비출 수 없는 어둠 곧 신비를 세상에서 몰아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둥 번개가 칠 때면 혹시 하늘의 신이 분노한 것은 아닌지 두려워 몸을 떨던 우리에게 이성과 과학은 천둥과 번개란 단순한 전기 현상일 뿐이며 일식이나 태풍 등도 모두 신적인 힘과는 전연 무관한 자연현상임을 설명해 주게 되어 자연은 그 힘을 상실하고 만 것이 사실이다. 이제 세상은 초월적 힘이 도처에 깃들어 있는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가 아니라 과학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명확하고 분명하며 ‘뚜렷한 불꽃’의 세계가 되었다. 그 결과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말았다.

실증주의와 이성주의가 내세운 이성과 논리 그리고 빛에 의해 어둠과 신비가 사라짐으로써 세상과 자연 속에서 신도 역시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것이 사라지면서 함께 온갖 경이로운 것, 판타지와 꿈 그리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신비의 세계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소로는 범신론자이므로 세상의 사막화와 황폐화 현상을 이렇게 범신론적인 빛 아래서 보았던 것이다.

또한 과학과 기계문명은 인간을 단순히 기술적, 기능적, 실용적 능력으로 키워내게 되고, 그러면서 인간은 꿈을 잃은 채 왜소해지기 시작했고, 하나의 기계처럼 되어 원천적인 ‘생명의 힘’을 잃고 말게 되었다. 그러니까 소로가 용서를 비는 ‘뚜렷한 불꽃’은 초월적인 신을 제외시키고 생명 없는 기계문명을 절대화 시키는 동시에 인간들을 기계화 시켜 메마르게 만든 인간의 이성을 단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카로스의 비상 곧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불가능에 대한 무모한 욕망과 초월적인 존재를 제외시킨 알량한 지식에 취하고 잠시의 성공에 우쭐해서 만용을 부리는 오만은 결국에는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능력이 안 되는데도 그걸 모르고 철부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만용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분량과 한계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이 오만이라 할 수 있다. 이카로스의 오만은 도를 넘은 만용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문명은 이런 겸손이 빠진 오만에서 기인되며, 그것이 도시를 메마르게 하고 황폐화 시키고 있다. 이런 ‘뚜렷한 불꽃’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기 위해 소로는 범신의 원천지인 월든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치유를 찾아 월든 숲으로

 

소로는 기계문명의 상징인 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그 도시의 메마름과 건조함이 싫어서 콩코드를 떠나 월든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월든 숲속 호숫가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2년 동안 살았다. 이와 같이 그는 문명사회의 온갖 편의를 훌훌 털어버리고 숲 속에 들어가 원시생활을 하면서 마치 개척자와도 같이 자연환경에 대처한다.

숲 속에서 사향쥐, 여우, 우드척, 들꿩, 올빼미, 소나무, 떡갈나무, 호수의 주정꾼 개구리, 미친 듯한 울음소리가 특징인 되강오리 등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와 숲의 일원이 되어 꾸준히 자족적인 성취를 이뤄나가는, 그의 인생 자체가 순정하고 고지식하며 담백하였으며, 그것 자체가 꿈을 되살리고 기계의 한 부속품이 아닌 생명체로 되돌아오는 것이며, 생명력 그 자체의 화복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홀로 살아가면서도, 그는 자기의 현실감각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에겐 크나큰 불행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명문에로의 초대에서 보듯이 “건강하고 순진한 귀에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지 않을 만큼 거센 폭풍도 없었다.”

또한 소로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살아가는 동안 거짓과 위선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인습과 고정관념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진실을 향한 그 대쪽 같은 집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다음과 같은 진리도 발견하게 되었다. “만일 비가 오래 계속 내려 땅속의 종자를 썩게 하고 낮은 지대의 감자들을 망쳐놓더라도, 그 비는 고지의 풀에는 여전히 좋을 것이다. 그리고 풀에게 좋은 것이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일종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한쪽이 안 좋아도 다른 쪽이 좋으면 합동해서 유익하게 되고, 서로 제 자리와 질서를 잘 지키며 상부상조하면 생명체의 결속이 이루어지게 될 뿐 아니라 원천적인 생명의 힘도 잃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로는 숲에는 나무와 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 어느 하나도 숲의 전부를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제자리가 아닌 곳을 탐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연 속에서 도시의 건조함과 황폐함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감각만 잃지 않는다면, 버리는 것으로 꽃을 피우는 초목들의 절제된 생명력과 저장력, 개미와 진딧물처럼 서로를 살찌우면서 살아가는 공생의 지혜, 자신의 씨앗을 품안에 두려 하지 않는 식물의 자녀교육법, 철저하게 썩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다른 식물을 키우는 나무의 희생과 같은 생명의 도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두 과분하게 탐하거나 넘보질 않고 겸손할 때, 비로소 도시와 기계문명이 잃어버린 초월적인 신비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리목’이라는 나무들이 자신의 살을 내어주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하듯이, 우리들이 서로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회복하고 서로 화해하고 하나님을 경외심을 갖고 받아드리며, 그가 지배하는 자연에 도전하지 아니하고 순응할 때, 우리는 현대문명을 누리면서도 도시의 황폐함과 무미건조함 및 메마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