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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숲을 거닐며 20]-에밀리 딕킨슨의 “만약 내가 ~”와 "길에서 홀로 뒹구는 작은 돌"

아름다운친구 2013. 4. 30. 07:34

명작의 숲을 거닐며 20

 

 

에밀리 딕킨슨의 “만약 내가 ~”와 "길에서 홀로 뒹구는 작은 돌"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하려는 가슴과 기술만 있다면-

 

조신권(연세대 명예교수/총신대 초빙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1) 만약 내가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멈출 수만 있다면,/난 헛되이 사는 건 아니리./만약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거나/한 고통을 진정시킬 수 있다면,/혹은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가 둥지로/돌아가도록 도울 수만 있다면/난 헛되이 사는 건 아니리.

1)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I shall not live in vain;/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or cool one pain,/or help one fainting robin/Unto his nest,/I shall not live in vain.

2) 길에서 홀로 뒹구는/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한가./세상 출세 신경 안 쓰고/긴급사태도 두려워하지 않네./천연의 갈색 옷은/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봐./태양처럼 독립적으로/혼자 지내고 홀로 빛을 내며/격식 차리지 않고 소박하게/하늘의 뜻을 온전히 이르누나.

2) How happy is the little Stone/That rambles in the Road alone,/And doesn't care about Careers/And Exigencies never fears--/Whose Coat of elemental Brown/A passing Universe put on,/And independent as the Sun/Associates or glows alone, /Fulfilling absolute Decree/In casual simplicity--

 

위에 든 명시는 영미 문학을 통해 가장 위대한 여류 시인으로 평가되며, ‘앰허스트의 수녀’ 또는 ‘은둔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평생 홀로 고독하게 살았던, 19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 중의 하나인 에밀리 딕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다. 그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다.

 

에밀리 딕킨슨의 생애와 작품

 

에밀리 딕킨슨은 1830년 12월 10일에 매사추세츠 주 앰허스트(Amherst)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1886년 죽을 때까지 55년을 여기 앰허스트에서 살았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극적 사건도 없이 그녀의 삶은 평범했지만, 내면적으로는 골수까지 파고드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삶이었다. 여기 앰허스트는 농지를 기반으로 하는 농촌 공동 사회로 프로테스탄트교 신봉의 중심지이었다. 이곳은 약간 고립된 곳이기는 하지만 성경과 셰익스피어, 그리고 고전문학을 읽는 심현(深玄)한 문화전통을 가진 좋은 사립대학이 있는 곳이다.

에밀리의 할아버지는 앰허스트 대학을 세운 지방 유지였고 아버지는 변호사로서 앰허스트 대학의 평생 이사였으며 주 의회의원이었으나 아버지로서는 거칠고 고작 방관하는 것이 다였다고 한다. 모친은 그녀의 오빠 오스틴과 언니 라비니아와 에밀리 자신을 위하여 조용한 내조자로 살았다. 그녀는 앰허스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마운트 홀리요크 여자 신학대학에 입학했으나 학교라는 딱딱한 규칙적인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중도에 그만두었다. 과묵하고 소심한 은둔자(hermit)라고 일반에게 그릇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녀는 재치 있고 활달한 성격에 대담한 성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신경이 과민한 편이었다.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근 55 년 간을 외부세계와는 거의 담을 쌓고 지냈고, 자기 집 대문 밖에도 나가질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세계는 자기 집 뜰이요 근처에 있는 코네티컷 계곡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이 세계를 주옥과 같은 시속에 형상화해 나갔다. 그녀가 즐겨 읽은 시인들은 키츠, 워즈워스, 및 브라우닝 부부였다.

딕킨슨이 외롭게 독신으로 보내게 된 데는 보상받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가 필라델피아를 들렀을 때 만난 장로교회 목사였던 찰스 워즈워스(Charles Wadsworth)를 사랑 하였으나 허사로 끝났고, 아버지 밑에서 변호사 시보로 있던 벤쟈민 프랭클린 뉴턴(Benjamin Franklin Newton)이라 하는 자유사상가와 사랑을 하였으나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여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질 못했던 것이다. 이런 사랑의 관계가 현실이었든 상상이었든 뚜렷한 증거는 없다. 다만 “나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나는 두 번 죽었다”(My Life closed twice before its close)라는 시 속에 암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에밀리가 죽은 지 69년이 지난 후 밝혀진 것이지만 그녀의 시는 1,775편인데, 그 중 500편 이상 되는 시의 주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생전에 출판된 시는 7편밖에 안 되는 데, 그것도 종이쪽지나 편지봉투의 뒷면 또는 포장지 같은 데에 썼다고 한다. 이 시들은 전부가 제목이 없는 무제시들이다. 그래서 일련번호가 붙여 있거나 시의 첫 줄이 제목이 된다. 그녀의 시세계를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쓴 편지 1,049통과 산문 124편도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영혼의 지축이 흔들리는 순간

 

우리 사람이 살아가면서 영혼의 지축이 흔들리는 순간은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고 할 일도 많다. 그래서 영혼 따위는 ‘일상’이라는 ‘전당포’에다 저당 잡히고 다니는 때가 대부분이다. 어쩌다가 틈을 내서 고전 음악을 듣는다든지 또는 좋은 책을 읽다가 감동의 물결이 순식간에 가슴으로 밀려오는 것을 감지할 때가 있다. 또는 감동적인 뮤지컬이나 가슴 찡하게 하는 명화를 보았을 때, 그렇게도 인색하게 닫아 두었던 눈물샘이 열릴 때가 있다. 언젠가 나는 『라 만차의 사람』(Man of La Mancha)이라는 뮤지컬을 본 일이 있다.

스페인의 ‘라 만차’라는 시골 마을에 사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50세 된 노신사가 있었는데, 그는 밤낮 기사도 이야기를 탐독한 나머지 정신 이상을 일으켜 스스로 기사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돈키호테’라고 고치고,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이 세상의 부정과 맞서 싸우기 위해 근처에 사는 어리숭한 농부 ‘산초 판자’를 종자로 거느리고 편력의 길을 떠난다. 모든 것을 중세기사도로 해석하는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양떼를 교전중인 군대로 생각하며,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이런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든 것이 『라 만차의 사람』이다. 이 뮤지컬에서 돈키호테가 부르는 다음과 같은 노래의 가사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용감한 사람도 가기 두려워하는 곳에 가고, 순수하고 정결한 것을 사랑하고, 잡을 수 없이 저 별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것, 이것이 나의 여정이다.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여도, 아무리 길이 멀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천상의 목표를 위해서는 지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여정에 충실해야 나 죽을 때 평화로우리. 그리고 이것 때문에 세상은 더 좋아지리. 아무리 조롱받고 상처 입어도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노력한다면,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기 위해 . . . ."

나는 이 뮤지컬을 보면서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돈키호테가 좋았고, 지금도 그런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라는 원작을 읽어보거나 『라 만차의 사람』이라는 뮤지컬을 꼭 가서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혼의 지축이 흔들리는 것은 그런 몽상적인 이상주의 룰 만났을 때에만 시동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런 황당무계 하고 호방한 유의 작품이 통쾌할 때도 있고, 풍자적이어서 시원한 데도 있지만, 요사이 같은 시대에 있어서는 잘 어울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현실감도 떨어진다. 그러나 햄릿형의 인간과는 정 반대적인 한 유형의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어서 이 작품을 보면 유익하기는 할 것이다.

한 번은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이라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이 쓴『피파 지나간다』(Pippa Passes, 1841)라는 시를 읽다가 『라 만차의 사람』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뛰는 가슴의 고동을 체험한 일이 있다. 여기 나오는 피파는 이 시의 주인공으로서 베니스의 실크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다. 이 소녀는 일 년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휴일 아침에, 마을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이는 네 사람의 집 앞을 돌며 소위 말하는 ‘아침의 노래’라는 송가를 부른다. 이 노래를 듣다가 불륜을 범하고 살인까지 한 오티마와 세발드는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게 되고, 속아서 창녀의 딸과 결혼한 줄스는 아내를 버리려다가 피파의 노랫소리에 새로운 사랑을 발견한다. 또 난폭한 폭군에 대한 암살계획을 포기하려던 루이기는 피파의 노랫소리에 다시 자신의 이상과 사명을 깨닫는가 하면, 속세의 악을 쫓으려던 늙은 성직자는 피파의 노래를 듣고 자신을 재무장한다. 피파는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써 상처 입은 영혼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바구어 놓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을 헛된 인생이라 할 수는 없다.

에밀리 딕킨슨이 “만약 내가 ~”라는 시에서 읊은 것처럼, 또는 『피파 지나간다』의 주인공 피파처럼, 사람이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싸매주고 진정시켜주며, 기진맥진 지친 울새를 둥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값없이 헛되이 산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즈음처럼 삭막한 때는 우리도 임종을 앞둔 사람을 호스피스로서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돕는다든지, 혹은 외롭게 지내는 독거노인을 돌봐주는 일 같은 하찮아 보이는 소박한 꿈부터 실현하는 것이 더 훌륭하다. 꿈이란 반드시 거창한 것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작고 소박한 것도 우리의 아름다운 꿈인 것이다. 이런 꿈을 실은 조용히 실현해 가는 것이 더 소중하다. 이렇게 작지만 실제적인 것에 마음 쓰면서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동의 물결은 더 클 수 있을 것이다.

 

소박한 작은 돌의 행복

위에 든 “길에서 홀로 뒹구는 저 작은 돌”이라는 시에서 에밀리는 길가의 작은 돌을 보면서 작은 돌의 행복을 노래한다. 길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작은 돌들이다. 이 돌들은 대단한 지성과 이성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직장이 있거나 긴급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시는 돌에게 갈색 옷을 입혀 준 것은 창조 세계를 둘러보는 탐구자인 하나님이시라는 전제 아래, 불순종하고 타락한 사람들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홀로 살아가며 격식이나 장식을 갖추지 아니하고 소박하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작은 돌’의 행복을 노래한 시다. 이는 ‘작은 돌’ 자체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볼 때 하찮은 돌과 같은 존재지만 그 본분과 의무를 다하면서 신의 뜻을 이루는 인생의 행복을 노래한 시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돌보다 뛰어나고 탁원한 재능과 자성을 가졌지만, 대부분 죄의 옷을 걸치고 썩은 냄새를 풍기며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며 살아간다. 큰일을 도모하고 계락을 꾸미는 현대인들일수록 대개는 자기의 본분과 위치를 지키질 않거나 제분수를 잊은 채 뻣뻣하게 굳어 시체처럼 살아간다. 격식은 없고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제 본분을 지킬 줄 알고 소박하게 살면서 빛을 발하는 삶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인생은 너무나 많은 소유를 갖게 되어 비대해졌고 정신과 영혼의 동맥경화에 걸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 병든 인생이 행복할리 없지 않겠는가? 돌은 감각이 없는 무생물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내고 있다.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나는 『조선일보』를 읽다가 사설에서 이런 미담을 접할 수가 있었다.

서울대병원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쉰일곱 살 난 이연수씨라는 분이 계신다. 그녀는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병원을 청소하는데 하루 일과가 늘 빠듯하고 바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녀는 매일 출근하여 이곳저곳을 청소하다가 병동 휴게실에서 입원비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 심하게 언성을 높이면서 다투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그때마다 이씨는 ‘아픈 것도 힘든데 돈까지 없으면 정말 서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형편에 쪼들려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그런 꿈을 남편에게 말했는데, 남편은 선뜻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고 동의를 해주었다. 이후 이씨는 없는 돈을 쪼개서 적금하였고 남편과 아들딸도 돈을 보태어 1000만원을 어려운 환자 병원비에 보태 써 달라고 서울대병원 환자치료후원회에다 맡겼다고 한다.

기부에 대한 이씨의 생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도 언젠가는 좋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그녀의 생각과 결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씨는 “기부를 해보니까 가수 김장훈씨가 ‘기부는 나 자신이 기뻐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이 맞더라”고 조선일보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이씨는 매월 수당을 합쳐 12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흔히 돈이 없어서 남을 도울 수 없다고들 하는데 이씨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틀림없다. 꿈은 하늘을 날겠다고 하는 것만도, 나라를 위난에서 구해보겠다고 하는 것만도 아니다. 나라와 사회가 시끄럽다고 우리가 다 거리로 나셔서 시위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작은 돌도 제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갈색 옷을 평생 걸치고 묵묵히 그 뜻을 이루어드리고 있다. 그것이 돌의 행복이다. 거창한 꿈을 품은 사람은 하늘만 쳐다볼 게 아니라 땅 아래서 이루어지는 작은 일들에도 따스한 관심을 가지고 헤아려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성과 과학의 빛으로 속속들이 조명되는 개명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그렇게 밝지도 풍요롭지도 못하다. 우리는 노동과 주변 사람들과 단절되어 마치 황야의 이리처럼 도시 속에서 외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자연을 파헤치고 파괴시킨 결과 지연으로부터도 떨어져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서 살게 되었다. 물질과 돈이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림으로써 우리의 정신은 날로 피폐해져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정신없으며 삭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초록빛 꿈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원천적인 생명의 힘을 잃게 되었다. 이제라도 영혼의 지축을 울릴 수 있는 꿈을 되살려야 한다. 다시 신을 찾아야 하고, 자연에 대한 신비와 의미를 회복하고, 작은 돌 하나에서도 영원의 그림자와 신의 섭리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와야 한다. 없는 돈을 쪼개서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이씨의 꿈이 곧 우리의 꿈이 될 때, 병든 사회가 다시 원천적인 생명의 힘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 삶의 음지가 양지로 바뀌고, 기진맥진하던 삶이 활기찬 생명력을 되찾게 되며, 작지만 작은 것으로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사회가 될 것이다.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작은 낙수(落水)의 물방울이 큰 돌을 뚫는다는 신념을 갖고 정신일도하면 대개는 다 성취할 수 있다. 에디슨의 많은 발견과 발명은 인류에게 행복과 이익을 주려는 과학자의 집념과 꿈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젊은 독자들은 꿈과 마음 안에서 불타는 열정과 욕망을 소유하여야 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하지만 산파(産婆)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 애써야 애를 낳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