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숲을 거닐며 - 11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썩은 고기 찾는 하이에나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만 될 수 있었으면!
조 신 권(연세대 명예교수/총신대 초빙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킬리만자로는 높이 1만9710피트의 눈 덮인 산으로서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그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신의 집 '느가이에 느가에'라고 불린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 말라 얼어버린 한 마리 표범의 시체가 놓여 있다. 도대체 이런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를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Kilimanjaro is a snow-covered mountain 19,710 feet high, and is said to be the highest mountain in Africa. Its western summit is called the Masai "Ngaje Ngai," the House of God. Close to the western summit there is the dried and frozen carcass of a leopard. No one has explained what the leopard was seeking at that altitude.
“몰로” 여인은 불렀다. “몰로! 몰로!” 그리고 여인은 말하였다. “해리, 해리!” 이어서 여인의 음성이 높아졌다. “해리! 이보세요, 오 해리!” 대답이 없었다. 사나이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텐트 밖에서는, 하이에나가 여인의 잠을 깨웠던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여인은 가슴이 울렁거려서 그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Molo," she called, "Molo! Molo!" Then she said, "Harry, Harry!" Then her voice rising, "Harry! Please, Oh Harry!" There was no answer and she could not hear him breathing. Outside the tent the hyena made the same strange noise that had awakened her. But she did not hear him for the beating of her heart."
위에 초대의 글로 실은 글월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가 쓴 중년기의 소설『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 of Kilimanjaro)이라는 작품의 모두(冒頭)와 결미(結尾)에 나오는 너무나도 유명한 명문이다. 먼저 헤밍웨이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헤밍웨이의 생애와 작품
헤밍웨이는 사냥과 낚시를 좋아했던 의사인 아버지와 미술에 관심을 크게 두었던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1899년에 태어났다. 그는 시카고 교외에 있는 고향 공립학교에서 교육받았다. 191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대학으로 진학하는 대신 캔자스시티로 가서 당시 주요한 신문이었던『스타』(Star)지의 기자로 채용되어 직업훈련을 받았다. 눈의 결함 때문에 군 입대를 계속 거절당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 겨우 미국 적십자사의 구급차 운전사로 참전하게 된다. 1918년 19세도 채 안 된 나이에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게 된다. 그의 이런 영웅적 행위가 인정되어 훈장을 받게 되고 밀라노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적십자사의 간호사였던 아그네스 폰 쿠로프스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거절하였다.
고향과 미시간에서 건강을 되찾은 뒤 다시 집필을 시작했는데, 한동안 시카고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헤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했으며, 『토론토 스타』(Toronto Star)지의 해외통신원이 되어 프랑스로 떠났다. 그는 파리에서 F.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같은 의식 있는 미국 작가들의 충고와 격려에 힘입어 비 저널리즘적인 작품을 여러 편 썼다. 1925년에 최초의 단편집인 『우리 시대에』(In Our Time)를 뉴욕에서 출간했고, 그 이듬해에는『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를 발표하였다.
그는 전후 몇 해 동안은 대부분 집필에만 전념했다. 이때 그는 아들 존을 얻었지만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으며, 그 뒤 폴린 파이퍼와 결혼하여 패트릭과 그레고리를 낳았다. 그는 파리에 살면서 스키·투우·낚시·사냥을 하며 두루 여행을 다녔는데, 그 무렵에는 이런 것이 거의 생활의 전부가 되었으며 많은 글의 배경을 이루었다. 1927년에『부인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을 발표하면서 더욱 많은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고, 1933년에는 『승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 한다』(Winner Take Nothing)로써 그 지위를 확고하게 다졌다. 사실상은『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1929)는 작품이 이 두 소설보다는 더 높이 평가된다. 결국 그는 많은 모험을 기초로 책을 썼는데, 스페인에 대한 사랑과 투우에 대한 열정을 소재로 해서는『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1932)을 썼고, 아프리카 여행과 사냥을 소재로 해서는『아프리카의 푸른 산들』(Green Hills of Africa, 1935)을 출판했다. 1937년에 쓴 소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To Have and Have Not)는 경제 불황기의 키웨스트와 그 근처가 배경이 되어 있다. 전쟁과 평화 기간에는 스페인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0)라는 소설이 나왔는데, 이 소설은 판매부수면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쿠바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으며, 3번째 결혼 역시 파탄에 이르자 4번째로 런던에서 만난 통신원 메리 웰시와 결혼해서 여생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쿠바의 핑카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곳에서 다시 진지하게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많은 여행을 다녔는데, 아프리카에도 1차례 여행을 갔으며 그곳에서 사냥여행을 하다가 2차례 비행기 추락으로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뒤 곧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1952)라는 장엄한 단편소설로 소설부문 퓰리처상을 1953년에 받았고, 1954년에는 베네치아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죽는 직업군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 『강 건너 숲속으로』(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 1950)라는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것으로 그는 혹평을 받은 것만큼이나 열광적인 칭찬도 받았다.
1960년경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이 일어나자 헤밍웨이는 핑카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는 아이다호의 케첨에 집을 구입하여 여생을 보내면서 예전처럼 작품을 쓰려고 했다. 잠깐 성공을 거두었으나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미네소타 주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요 클리닉에 2차례나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치료후 집으로 돌아온 지 2일 뒤 그는 엽총으로 자살했다. 그 해가 1961년이었다.
헤밍웨이는 가장 위대한 현대 소설가들인 토마스 만,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에 필적하지는 못했지만, 혁신적인 문체, 기법 묘기, 강렬한 정서에 토대를 두고 글을 썼다는 점에서 그의 위상은 그들 못지않다.
작품의 줄거리
이 소설은 1936년 그러니까 헤밍웨이가 37세 때 쓴 작품이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지난 일들에 대한 회상과 죽음에 대한 반응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주인공 해리는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행동파 인간이다. 여러 여인들을 만나 사랑하고 세상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아프리카를 사랑하게 되어서 킬리만자로 산정이 바라보이는 들판에서 사냥을 하면서 지낸다. 그러던 중 아름다운 한 떼의 영양을 보고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접근하던 중 가시에 무릎이 긁힌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두었던 그것이 패혈증으로 번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그 죽어가는 과정에 있는 주인공 해리가 지난 자신의 생애에 대해 글로 써서 남겨놓고 싶었던 순간순간들을 회상하는 장면들로 이어진다. 그는 지금 닥쳐오는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호기심조차 느끼지 않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까지 남아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있는 여인 헬렌이 보살피면 서 보내는 미소와 향기 속에서 언뜻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그 순간 공허가 하이에나처럼 밀려온다. 그 죽음이 다가온다는 의식이 점점 심화되어간다. 그의 죽음은 돌연히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사르르 흔들어 불꽃을 높이 불어 일으키는 바람’모양 훅 불어오는 것이었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다가오는 그 죽음을 너무나 시각적으로 잘 묘사해주고 있다. ‘죽음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포장도로 위를 소리 없이 달려오고 있었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주인공 해리는 이젠 다른 모든 것이 귀찮아 지는 것처럼 죽음도 귀찮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귀찮다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르고 죽음이 자신을 덮친다.
그런데, 갑자기 소설은 전환되어, 그가 건강하게 아침을 맞게 되었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런 전환된 전개에 따르면, 밤새 어느새 건강이 호전되고, 옛 친구가 비행기를 몰고 와서 병든 그를 싣고 병원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 그는 죽었다. 단지 그의 영혼이 그의 육체를 떠나 그의 친구의 비행기를 타고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것을 그런 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주인공은 자기를 구하러 온 비행기를 타고 구조되는 꿈을 꾸면서 하이에나가 우는 소리를 듣는 가운에 죽음을 맞이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도전정신
『킬리만자로의 눈』의 주인공 해리는 헤밍웨이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은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일상을 벗어나 특히 전쟁과 오지 여행을 통하여 사냥, 투우, 낚시 등으로 도전정신을 어느 작가들보다 많이 발휘하였다. 결국 그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는 했지만, 약동하는 육체의 에너지와 삶과 죽음의 긴장관계에 경도되어 있었던 ‘부닥치기 정신’의 화신이었다.
도전(challenge)과 부닥침(encountering) 없이 변화와 발전이 있을 수 없고, 노력과 싸움 및 추진력 없이 역사와 문화가 발전하고 삶의 새로운 진로가 열릴 수 없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거나 미래의 세계로 뛰쳐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지켜야할 가문과 국가 또는 사회의 전통이 있다. 이런 전통은 변함없이 지켜야 하지만 그 전통을 전하고 지키는 방법이나 담는 그릇은 세상이 변한 만큼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기와 열정 없이 표범이 어떻게 그 높은 킬리만자로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겠는가?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 깊은 구절들이 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평지에서도 먹잇감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도전과 인내심을 선택하였다.” “표범에게는 꿈과 야망이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하이에나나 다른 표범들이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표범은 사람도 잘 올라가지 못하는 킬리만자로에 도전했고 그 정상과 부닥치며 오름에 닥치는 어려움과 고통 및 외로움에 창의적으로 도전하며 나가 결국 정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거기서 그 표범은 얼어서 죽었다. 우리는 죽으면 소용없지 않느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죽지 않고 살아서 썩은 고기나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가 되어 부패의 구덩이에 우리의 영혼을 묻고 사는 것보다는 더 훌륭하고 가치 있는 모험이요 시도가 아니겠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면 살 길이 열린다.
우리는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고 킬리만자로에 표범이 정말로 있었으며 어떻게 무엇 때문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는가 하는 진위를 따져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해발 5895미터나 되는 킬리만자로의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그 도전정신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 하이에나는 같은 육식동물이지만 그 높은 산의 언저리에서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삶을 거기서 마감하는 것이다.
지성이나 영혼도 없는 동물도 자신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목숨을 걸고 무엇인가 갈망해서 정상을 도전했다면 영적인 존재로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썩은 고기나 찾아다니느라고 힘을 따 쏟아서 갈망과 도전을 다 소멸해서야 되겠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 해리도 하이에나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어가는 임종직전에 비로소 킬리만자로의 정상까지 올라가 죽은 표범의 영광과 도전정신 및 아름다운 용기를 깨달았다. 좀 더 일찍 그가 그런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그렇게도 그가 바라던 훌륭한 작품도 썼을 뿐 아니라 끝까지 그의 곁에서 그를 돌봐주는 아내에게 진실과 사랑의 말을 남기고 죽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사로잡혀서 한 순간도 진실 하지 못했고 한 치의 전진도 할 수 없었다.
표범이 그만의 길을 찾아 눈 덮인 산정에까지 천신만고 끝에 올라가 설원(雪原)을 마음껏 달리다가 죽은 것처럼, 또 로버트 프로스트가 ‘숲 속에 나 있는 두 가지 길 중에서 사람들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던’ 것처럼, 『신앙세계』를 읽는 독자들과 우리 젊은이들도 조금은 위험하지만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을 택해서 도전하고 전진했으면 한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excellence)도 의미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건(difference) 또 다른 경쟁력이 될 것이다. ‘탁월하기’보다는 ‘차이나기’가 더 소중하다.
사실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고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려면 갖추어야 할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용모, 체력, 학력, 지역, 배경 등 다 있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 가지고는 되질 않는다. 이스라엘을 세운 벤 규리온은 용모가 뛰어나지 못하다. 키가 5.3피트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국부로 숭앙한다. 등소평은 얼마나 작은가? 그런데 그가 거대한 중국을 이끌어가지 않았는가? 그것은 용모나 체력, 학력이나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진취적인 창의력과 신앙적인 모험심 및 확신 있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부닥쳐 나가느냐 하는 것과 어려운 난국을 헤치며 응전해 가느냐 하는 용기와 열정에 달려 있다. 불타는 영혼 없이 태산을 어떻게 오를 수가 있겠는가?
나는 내가 큰 지도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실패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근 팔십 평생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의 도전을 받았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역경은 반복되고 이어졌지만 비겁하게 피하지도 않았고 낙담하여 주저앉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에서 한 번도 탈선한 적이 없고 후회한 적도 없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많은 돈은 벌지 못해도 오직 그 한 길, 곧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물론 진작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치열한 도전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나 나름대로 부닥쳐서 난제를 해결하며 오늘날까지 외길을 걸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남이 모르는 환희와 업적도 있다. 그 결과 나는 지금 행복하고 나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그렇듯이 우리도 역사의 무대에서 목맨 송아지처럼 쫓기면서 고난과 시련의 험준한 가시밭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내가 좋아서 택한 길이라면 만난을 무릅쓰고 헤쳐 나가야 하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는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고지를 향해 올라가고 도전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여정의 산정에 서게 되면 우리의 지경은 넓어지게 되고 앞이 탁 트여지며 낙원에서 솟아나는 샘물 같은 환희의 생명수를 마실 수가 있게 될 것이다. 혼자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향해 오른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그 고독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자는 자신의 길라잡이로서의 자격이 없다. 우리는 늘 고독과 싸워야 한다. 그것은 피와 눈물과 땀의 결정이요, 백년천마(百年千磨)의 산물이요, 악전고투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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