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현실적인 시련을 감내(堪耐)하라

아름다운친구 2007. 6. 10. 05:19

2007년 6월 10일 일요일
현실적인 시련을 감내(堪耐)하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3-4)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어서 시련을 감수하지만 그것이 길어지면 점점 힘이 들어집니다. 그럴 때 낙심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견디어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시련을 감내(堪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황이 호전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서 성숙한 인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숙한 인격은 지식이나 재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우리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욥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재산을 다 날리고 자녀들도 다 잃는 불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건강을 잃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는 그를 저주한 후 떠나고 친구들이 찾아와서 위로한다면서 오히려 상처만 주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그는 인내로 견디어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멋진 의인의 대열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을 감내한 덕분에 위대한 인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직접적인 시련도 있지만 간접적인 시련이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집값이 올라서 몇 억씩 벌었다는 소리를 듣거나 가까운 친구들이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 시련을 겪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참아내면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그런 상태를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 이런 인격적인 성숙은 우리의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상황을 우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반응이 만들어냅니다. 그러면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참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내심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름다운 열매를 얻는 기쁨을 맛보게 하옵소서.
By 방선기 목사

2007년 6월 10일
땅의 깊은 의미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언젠가 나는 장식 단추가 박힌 가죽 자켓의 등에 이 성경 구절을 적은 채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를 달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나에게 그 성경 구절의 무게가 1톤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이 성경 구절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에 몰두하게 만드는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입니까? 이 성경 구절이 '땅이 고침을 받는 것'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성경 구절을 단지 기도를 강조하는 의미로만 받아들인다면 약간의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의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땅에 임한 기근과 전염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 땅은 꽤 큰 이슈로 부각됩니다. 예를 들면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논란이 들끓고, 환경운동이 활발히 일어납니다. 단지 애석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대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땅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는 시대입니다. 땅은 단지 우리가 사는 장소의 의미를 넘어서 그 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 주장이 마치 뉴 에이지(New Age) 운동의 지지자의 말처럼 들립니까? 그러나 나는 뉴 에이지 운동의 지지자가 아닙니다. 단지 나는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우리의 환경을 파괴한 시대에 사는 우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정신적 영역에서 ‘덕(德)과 칭찬’은 영원하고 성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물질적 영역에 속하는 ‘법칙들과 생명과 아름다움’도 그만큼 영원하고 성스럽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재배하는 땅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양식을 그토록 신선하게 당신에게 전해주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지각
주제어 : , 예배, 지각
2006-06-10

 

 

지난 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 85명이 예배 시간에 지각을 했다.

 

예배가 시작된 뒤에 온 아이들이 85명이란 말이다..

 

애들이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그런 경우도 있거니와

 

적지 않은 수는 아이를 차에 태워 같이 오는 부모님들이 늦기 때문에

 

늦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바꿔 말하자면 부모님들이 예배 시간에 늦는다는 거다.

 

 

아이들 나무랄 것이 아닌 것 같다...

 

부모님들이 아이들 앞에서 예배를 귀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서 예배를 귀히 여기는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