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일로부터 떨어져 몸과 마음을 조율하기!

아름다운친구 2007. 4. 28. 07:29

2007년 4월 28일 토요일
일로부터 떨어져 몸과 마음을 조율하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8-10)

 친히 리트릿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명하시면서 친히 창조 후의 안식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님도 친히 모범을 보이면서 제자들에게 쉬라고 하셨습니다. 쉬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입니다.  그런데 쉬는 것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노동에 대해서 오해하듯이 쉬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쉬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잠만 자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가만히 있고 자는 것도 쉬는 것의 일부이긴 합니다. 정말 며칠 동안 잠만 자야 할 만큼 고단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리트릿의 전부는 아닙니다. 반대로 쉬는 것이 또 하나의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광을 하는 것을 보면 흔한 말로 진을 뺄 정도로 일정이 빡빡하여, 그 자체가 또 다른 노동이 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리트릿은 일로부터 떨어져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조율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홍보에 관한 일을 하는 직장인 에밀리 그리핀이 그녀의 책 『리트릿』에서 말합니다. 리트릿은 자의식과 허의의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본연의 모습을 찾는 기회이고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서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을 때가 가장 리트릿이 필요한 때라고 합니다. 육신을 쉴만한 풍성한 준비가(시간, 여가, 분위기 등) 되어 있고 영적 양식도 풍성한 곳을 선택하여 기도의 문을 활짝 열라고 에밀리 그리핀은 권합니다. 


*일터의 기도 : 사람마다 리트릿의 방법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꼭 리트릿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효과적인 리트릿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활력을 얻을 수 있게 해주옵소서.
By 방선기 목사

2007년 4월 28일
세상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그리스도인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노라...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 1:3-4,11

본래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왜 두 권으로 분리되었는지는 너무나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서 알 길이 없습니다. 한 가지 이유를 추측하자면, 느헤미야서가 느헤미야에 의하여 주로 일인칭(一人稱)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잔을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기에 이 직책이 그렇게 높은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노예 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꽤 높은 직책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느헤미야는 그의 동족이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에 합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형제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찾아와 예루살렘 성벽이 폐허가 되었다고 일러주었을 때 그는 그 성의 심각한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아닥사스다왕이 그의 얼굴의 수심을 알아차렸습니다. 당시 왕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은 대개 참수형에 해당하는 중죄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느헤미야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왜 근심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느헤미야는 유다의 총독이 되었습니다.

별로 높은 신분이 아닌 사람이 갑자기 높은 지위에 오른 경우가 성경에는 많이 나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느헤미야가 물론 하나님께 복종했기 때문에 높은 지위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이유를 들라면, 그가 왕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게을리 하거나 그것들에서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위에 있는 세상의 권세자를 존중했기 때문에 왕에게 보답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당신의 일을 자발적으로 하십시오. 당신의 세상의 주인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일하십시오.
느헤미야는 ‘왕에게 잔을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당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당신 위에 있는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행동
주제어 : 믿음, 행동
2007-04-28

 

 

우리의 모든 일들 가운데에는 그 일이 있게 된 원인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몸이 아프면 아픈 이유가 있듯 말이다.

 

우리 믿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가 날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이유가 있는데,

 

왜 이토록 중요한 이유의 결과가 보이지 않는 걸까?

 

바꿔 말하면

 

내 믿음의 행실이 그다지 보암직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냔 말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면서도

 

행동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