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갈 때 가더라도 여기서는 최선을!

아름다운친구 2006. 11. 20. 15:59

2006년 11월 20일 월요일
갈 때 가더라도 여기서는 최선을!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창세기 40:6-7)

직장 생활을 감옥 생활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자유가 없고 미래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직장인 요셉은 (감옥 같은) 직장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확인해봅시다. 그도 사실은 감옥이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해몽대로 복직하게 될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구명을 위해 힘써줄 것을 당부했습니다(14-15절). 얼마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요셉의 부탁 속에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런 지긋지긋한 감옥에서 어떻게 일했습니까? 파라오의 관원장들을 섬기는 임무가 주어졌을 때의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들의 얼굴에 근심하는 빛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친절하게 질문했습니다. 좋은 일도 아니고 근심하는 빛인데 알아봐야 귀찮을 일밖에 더 생겼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평생직장 시대가 아닌 평생직업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누구나 고용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은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했? 윱求? “갈 때 가더라도 여기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한다!”는 표현은 성경적입니다. 다만 ‘가야 할 곳’에 집중하면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하다보면 하나님이 갈 곳을 예비해주시기도 합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요셉의 인생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얼굴 표정을 살폈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요셉과 같은 자세로 저의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By 원용일 목사

2006년 11월 20일
넘어진 양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 10:3

나의 장인 켄(Ken)은 런던에서 자주 잘 나가던 사업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서 그의 필생의 야망들 중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바로 시골에서 양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일에 처가를 찾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아침마다 따뜻한 외투를 걸치고 좁을 길을 달려 내려가서 양들의 숫자를 세곤 했습니다. 나는 작은 방울이 달린 꼭 끼는 털실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둘렀으며, 장인 어른은 방수포로 된 외투를 입고 테 없는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닿는 농부용 녹색 웰링턴 부츠를 신었습니다. 장인 어른이 “양들아!”라고 소리치면 양들이 달려와서 먹이를 먹었으며, 그 틈을 이용하여 양들을 세곤 했습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장인 어른의 코트를 입고 그의 모자를 쓴 채로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양들의 이름을 부르고 먹이를 주려고 했지만 양들은 언제나 도망했습니다. 양들이 주인을 알아본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선택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 지에 대하여 궁금해합니다. 왜 그분은 그토록 침묵하실까요? 그 침묵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는 그분의 음성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목자가 아닌 사람이 아무리 목자처럼 옷을 차려입어도 양들은 가짜를 구별해냅니다. 지금 당신은 주님의 음성과 다른 가짜 목자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주님과 가까이 동행합니까? 그분의 음성에는 격려와 훈련과 은혜와 소망의 톤(tone)이 배어있습니다.
양들에 관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양이 뒹굴다가 등을 땅에 대고 눕게 되면 혼자 힘으로는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움직이지 못할 때 굶주린 여우가 와서 잡아먹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누워버린 양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사람이 와서 그 양의 털을 붙잡아서 일으켜 세워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는 사람 중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에게는 다시 일으켜줄 사람이 꼭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을 내어 그를 찾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