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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숲을 거닐며 16]-지오프리 초서의『캔터베리 이야기』

아름다운친구 2013. 4. 30. 07:19

명작의 숲을 거닐며 16

 

지오프리 초서의『캔터베리  이야기』

-부활의 계절에 우리의 메마른 영혼도 소생했으면-

 

조신권(연세대 명예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4월의 부드러운 비가 3월의 가뭄을 뚫고/바로 뿌리까지 들어가 각 잎맥들을 통하여/온갖 새싹들을 그 줄기찬 물기로써 적시면,/꽃들은 일어나 피어난다./또한 서풍이 모든 들과 숲으로 불어와/연한 싹을 밀어내고 젊은이 같은 태양이 이제는/양자리(백양궁)를 지나 후반경로를 달려갈 때,/작은 새들이 노래 가락을 짓고/밤새도록 자고 나 눈들을 뜰 때/(그렇게 자연은 모든 작은 가슴속에 자극을 가하는데),/그때 사람들은 순례 시작하기를 갈망한다./순례자들은 다른 나라의 각 지방 여행객들로 하여금/여러 나라에 잘 알려진 먼 사원까지 가게 한다./특별히 영국에 있는 모든 변두리 사원에서/캔터베리까지 가게 했다./축복된 순교자를 찾는 것이 그들의 의지고/그것은 병이 났을 때 병을 낫게 하는 그런 도움도 주었다./내가 하루 밤 묵은 태버드에 있는 사우스와크에서/경건한 마음으로 캔터베리를 향해/출발할 준비를 전부 마쳤을 때/밤 9시 20분쯤에 각 지방의 사람들이/그 여인숙으로 들어와/우연히 교제를 이루게 되었는데, 그것은/그들 모두가 순레자들이기 때문이었고/캔터베리까지 모두 함께 가게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캔터베리 이야기』1-26행.

When April's gentle rains have pierced the drought/Of March right to the root, and bathed each sprout/Through every vein with liquid of such power/It brings forth the engendering of the flower;/When Zephyrus too with his sweet breath has blown /Through every field and forest, urging on/The tender shoots, and there's a youthful sun,/His second half course through the Ram now run,/And little birds are making melody/And sleep all night, eyes open as can be/(So Nature pricks them in each little heart),/on pilgrimage then folks desire to start./The palmers long to travel foreign strands/To distant shrines renowned in sundry lands;/And specially, from every shire's end/In England, folks to Canterbury wend:/To seek the blissful martyr is their will, /The one who gave such help when they were ill./In Southwark at the Tabard where I /lay, 20 에 Southwark/As I was all prepared for setting out/To Canterbury with a heart devout,/That there had come into that hostelry/At night some twenty-nine, a company /Of sundry folk whom chance had brought to fall/In fellowship, for pilgrims were they all/And onward to Canterbury would ride.-Canterbury Tales, Prologue, ll. 1-26.

 

위에 든 명문은 영국의 중세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지오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0?-1400)의 가장 유명한 설화시인『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의 서곡 부분이다. 먼저 초서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초서의 생애와 작품

 

초서는 1340년 런던에서 태어나 1400년에 소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영문학의 아버지라 할 만한 큰 작가다. 그의 부친 존 초서는 런던 포도주 상인이었기 때문에 빈번히 궁정을 출입하였고 따라서 초서도 어릴 때부터 궁정을 출입할 기회가 있었다. 더욱이 그가 17세 때(1357), 에드워드 3세의 삼남 리오넬(Lionel) 백작의 부인 엘리자베스의 궁정 시동 (page)이 되었다. 이때부터 당시 궁정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프랑스 문학을 접촉하게 되었고, 백작 부인의 주선으로 세력가 곤트의 존(John of Gaunt) 즉 랭캐스터 공을 알게 되어 평생토록 그의 후원을 받았다. 1357년부터 69년 사이에는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와의 싸움에 나가기도 하였다. 당시 영국은 에드워드 3세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그 왕조를 우리는 흔히 프랜태제닛 (Plantagenet)이라고 한다. 이 왕조는 영국의 혈통이라기보다 오히려 프랑스 혈통이다. 그래서 당시 궁정에서 사용하던 언어, 풍속, 제반사가 프랑스 일색이었다. 때문에 궁정의 시동으로 있으며 궁정을 자주 드나들던 초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의 생애에 있어서 1372년까지를 프랑스기라고 한다.

초서가 최초로 프랑스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는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를 들 수 있는데, 이 시인은 위대한 시인은 아니었으나 순수한 시인으로서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시형을 갖춘 시와 발라드를 전파시켰다고 한다. 초서는 그의 서정시를 쓰는데 그로부터 시적 기교와 서술 및 묘사 등 여러 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초서가 시인으로 등장하는데 영향을 준 작품은 2만행 이상으로 된 『장미의 이야기』였다. 당시의 프랑스 문학의 대표작품들은 대개가 풍자적이고 교훈적이었으며 우화적이었다. 초서는 이런 삼대 특징을 다 포함하고 있는 『장미의 이야기』에 대하여 매력을 느꼈고, 결국 그는 그것을 영역해 볼 의욕을 갖게 되었다. 번역에 착수 불과 1800행의 미완성 번역으로 끝났지만, 그것은 운율이나 시적 기교를 수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아울러 중세 영어의 통일을 갖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이처럼 초서는 『장미의 이야기』의 작가로부터 사상, 감정, 형식, 운율 등을 배웠다. 이러한 현상은 그의 초기 작품인 ?공작 부인의 책?(The Book of The Duchesse), ?새들의 의회?(The Pailiament of Fowels), ?명성의 집?(The House of Fame)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초서는 1366년에 필립빠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했는데, 이로 인해 생활이 아주 넉넉해졌으므로 그는 시인으로서의 소지(素地)를 닦을 수가 있었다. 그 뒤 그는 국왕의 외교관으로서 1370년 잠시 프랑스에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 이탈리아로 두 번이나 여행하는 행운을 가졌다. 이 여행을 통하여 초서는 이미 르네상스의 기운이 태동된 지 오래된 이탈리아의 문물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특히 여러 가지 점에서 그와 많은 유사점을 지닌 복카치오의 글에 접할 기회를 가졌던 것도 바로 이 때였다. 또한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활발한 문예활동을 보기도 하였다. 그 결과 그는 프랑스 문학을 버리고 일보 전진하여 새로운 문학 풍토에 접하게 되었다. 전후 2회에 걸쳐 이탈리아 여행을 한 10 수년간(1372-85)을 소위 그의 생애에 있어서 이탈리아기라 한다. 이 시기에 쓴 작품으로는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Troilus and Criseide)를 들 수 있다.

초서의 생애에 있어서 최후의 수년(1385-1400)은 초서의 사상 및 예술의 원숙기로서 보통 프랑스기나 이탈리아기에 비해서 영국기라 할 수 있다. 1385년 초서는 런던에서 켄트 주로 집을 옮겨, 다음 해에 켄트 주를 대표하여 국회에 나갔다. 이때부터 그의 생활은 차츰 어려워져 갔는데, 그 이듬해에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으로 이러한 사정은 더욱 절박해졌다. 그러나 초서는 시작에 전념하며 곤궁과 쓸쓸함을 달래었다. 이렇게 어려움을 이기고 헤쳐 나가는 데에는 그의 시재와 낙관적인 인생관과 풍부한 인간성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역시 ?캔터베리 이야기?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1387년 그가 켄트주 대의원이 되었을 무렵이라고 한다. 그 전해인 1386년에 ?착한 여자들의 일화?(The Legend of Good Women)을 쓰기도 하였다. ?착한 여자들의 일화?에서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정도였지만,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는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구성 양식을 벗어나 그의 실제적인 관찰과 풍부한 상상력으로써 작품에 통일성을 보여 주었다. 이 점이 초서의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초서의 문학적 독창성은 해학이 넘치는 반면 진실을 꿰뚫는 힘이 있으며, 자유자재로 운율을 다루는 재능을 발휘한 점이라 할 수 있다.

4월은 왜 잔인한 달인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며/기억과 욕망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일깨운다./겨울은 우리를 포근하게 헤주었다,/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이 시구는 T. S. 엘리엇이 『황무지』제1부 「사자의 매장」모두에 나오는 일절이다. 이 묘사는 모든 식물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소생하는 4계절의 회귀 곧 자연 질서와 연관되고, 다시 그것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엘리엇의 삶과 죽음에 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엘리엇은 『보들레르론』에서 “우리가 인간인 한, 우리가 행하는 것은 선이거나 악이다. 선이나 악을 행하는 한 우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악을 행하는 편이 낫다. 그땐 적어도 우리는 존재한다”고 말한 바와 같이, 결국 선악을 식별하는 것이 삶이고, 그 의식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곧 죽음이라는 것이다. 현대세계를 둘러보면 선악의 식별력이 없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그런 세계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비실재적인 도시 곧 황무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황무지’란 사람이 손을 대지 아니하고 그냥 내버려둔 거칠고 쓸모없는 땅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아무런 의식상태가 깨어 있지 않은 ‘가사상태’를 원하는 사람들만이 우글거리는 창조적인 것이나 생명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정신적 상황을 일컫는다. 살아 있으나 거의 죽은 것과 마찬가지 상태로 살아가는 삶을 엘리엇은 ‘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 곧 황무지라 하였다. 삶 속에 죽음만이 우글거리는 살아 있으나 죽은, 선악은 있으나 식별은 되지 않는 그런 사회는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 안일무사하게 잠이나 자기를 원할 뿐, 깨기를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만물이 깨어나는 4월은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다.

이 황무지의 주민들에게는 만물이 움트고 새싹들을 솟구쳐 내며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죽으신 예수께서도 부활하시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달, 4월을 잔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4월을 잔인한 달로 여기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을, 빛보다는 어둠을 더 선호한다. 그들은 진리보다는 거짓을 더 좋아한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고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다. 그래서 영적인 생명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보다는 현세적인 사탄의 미혹과 화려한 꾸밈과 사술을 더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삶속의 죽음인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사상태로 몰고 가는 겨울이 오히려 포근하고 더 안락하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역사적인 의식을 눈 속에 묻은 채 누워 있기를 더 좋아한다. 이것이 황무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병이요 비극이다. 현대인들의 타락은 다만 도덕적인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영적인 각성을 중단하고 선악에 대한 분별을 유보한 채 그저 무사안일주의로 흘러가는 것이다. 부활을 원치 않는 어둠의 자식들은 낮처럼 밝은 빛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매도하며 공격한다. 깨끗한 것을 싫어하는 요즘 세상은 매우 혼탁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생명과 정신적인 것을 일깨우는 4월을 싫어하며 어둠끼리 어울려 자고 더럽고 추한 자리에 누워 있기를 좋아한다. 요즘 이 세대는 경칩인데도 겨울잠 자는 개구리들이 깨어나질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시대다. 이들에게는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다.

 

부활의 계절에 우리의 메마른 영혼도 소생했으면

 

같은 4월이지만 엘리엇은 잔인한 달로 보았고, 초서는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달이요 모든 나무줄기에 물기가 오르고 꽃망울들이 피어나려고 준비하는 힘찬 새싹들의 약진하는 달로 보았다. 모든 계절은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다. 봄은 푸르러서 청(靑)이요, 여름은 붉어서 주(朱)다. 가을은 투명하여 백(白)이고 겨울은 검어서 현(玄)이다. 봄날의 푸르름은 블루(blue)나 사이언(Cyan) 같은 짙은 색이 아니다. 물이 오를 때로 오른 여름날의 그린(Green)도 아니다. 봄을 봄이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연둣빛이다. 무르익은 초록을 향해 솟아오르는 뾰족뾰족한 화살표의 색, 바로 그게 뭇 생명이 움트는 이 계절의 몸빛이다. 이 연둣빛의 계절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약동의 신호다.

나무는 가을이 오면 스스로 잎을 떨어뜨려 생명력의 낭비를 막아 겨울을 극복한다. 새봄이 오면 스스로 입을 버린 나뭇가지에 하나님께서는 숨결을 불어 넣어 새싹이 돋아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연둣빛 바람이라 할 수 있다. 비우고 은총을 갈망하면 그 빈 공간으로 연둣빛 바람이 불어와 충만하게 된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물기가 오르고 새 숨결이 이어가는 달이 4월이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도 이처럼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며 나뭇가지들이 연둣빛 싹들을 터내는 4월이 되자 경향 각지에서 모여든 각종 사람들이 캔터베리 사원을 순례하러 가기 위해 런던 근교 타버드 여인숙으로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결 같이 그들의 마음에는 그 메마른 영혼들이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염원과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관광차 가는 여행자도 있었지만 대개는 영적인 소생을 기대하며 캔터베리 대성당을 순례하는 것이었다. 고행이나 순례도 가톨릭교회에서는 거듭나는 삶의 전제조건인 정화의 과정인데, 개신교에서는 그것을 회개라 한다.

캔터베리 대성당이 성지가 된 것은 헨리(Henry) 왕과 사사건건 맞서며 로마의 교권을 옹호하던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아 베케트(Thomas a Becket)이 대성당 안에서 헨리 왕의 부하 네 명에 의해서 살해되어 성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계절이 오면 신실한 성도들은 캔터베리 대성당을 순례하듯이, 우리는 필히 정욕과 속물근성으로 가득 찬 현 삶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생명수의 근원을 찾아 떠나야만 한다. 먹고 살아가며 돈 벌어 즐기는 것 말고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는 영적인 노력이나 생명양식을 찾아 떠나는 영적인 움직임이 없으면 살았으나 죽은 것과 같다. 이것은 타락이요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을 중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옛날 고사 성어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쪼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이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부화가 가능하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 어느 한 쪽의 힘만으로는 깰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안과 밖이 시기를 맞춰 동시에 작용하지 않으면 또한 알을 깰 수가 없다.

4월이 되었는데도 깨어나기를 원치 않으면 은총의 단비가 내리고 연둣빛 바람이 불어와도 상호 조응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심령의 부화도 안 되고 생명도 껍질을 벗고 살아나올 수가 없다. 생명이 가사상태에 있는 땅을 우리는 황무지라 한다. 캔터베리의 순례자들이 영혼의 소성을 위하여 대 사원이 있는 런던으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황폐화된 영혼을 꽃피우기 위하여 주와 함께 우리영혼이 소성하기를 갈망하여야 한다. 갈망과 기도는 우리마음의 심지에 불 부쳐 높이 뜨게 하고 우주 속으로 진입하여 주와 만나도록 하는 로케트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