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
요즘 주변에서 유독 추천하는
영화 두 편이 있다.
하나는 <부러진 화살>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더 뜨고 있다.
다른 한편은
개봉한지 20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한 <댄싱 퀸>이다.
이 영화는 우리 작은 딸이
적극 추천했었다.
속이 뻔히 들여 보이지만
감동적인 영화라고
극찬했기에
마음먹고 아내와 함께 감상했는데
기대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작년에 봤던
<써니>를 떠오르게 하는
80년대 눈에 익은 풍경들이 먼저
내 마음을 평온케 했다.
학교의 풍경,
목욕탕, 나이트클럽,
데모 진압하는 군인들까지
모든 장면들이
중년들에겐
그 때의 향수를 자극시켜 주고,
젊은 세대에겐
부담 없는 코미디 속에
신선한 무언가를 얻고 가기에 우리 딸이
추천했던 모양이다.
황정민과 엄정화,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천적이라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부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작가의 기막힌 우연기법으로
기어이 부부로 만들었지만,
관객들은 과정을 따지기는커녕
어느 덧 그들과 한편이
되어 주인공보다 더 안타까워한다.
결혼 이후
그들이 겪는 에피소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누구라도 경험할 수 일이였기에
관객들은 영화가 아니라
자신의 독백을 듣는 듯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변호사 황정민,
에어로빅 강사 엄정화,
어찌보면 너무나 평범한 부부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오면서
스토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이
울렁증이 들지 않았던 것은
엄정화 모습에서
아내가 보이고 어머니가 보였고,
황정민 모습에서
자신과 아버지를 발견하였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모처럼 영화에 빠질 수가 있었다.
이 영화는
70 80노래 좋아하는 세대 뿐 아니라,
젊은 층까지 공감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황정민의
순수(純粹)함에 있었으리라.
순박한 시골 남자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풀고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서울턱별시’로 발음하는
그의 투박한 말 속엔
코믹과 순수 그리고 열정이
담겨있기에 쉽게 동화 되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조폭이 아니라,
황정민처럼
순수하면서 솔직하게 들이대는
사람이다.
물론 순수하기에
비겁하거나 어리석게 행동할 때도 있고,
때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 때도 있지만
본심은 진실하기에
불순한 이에 비해 그들은
두려움이 없다.
적이 없기에 잠도 잘 잔다.
행여 넘어졌을지라도 빨리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아주 작고 단순한 이야기가
가슴에 팍 꽂히게 한다.
황정민은 저출산대책에 대해
토론할 때 몇 만원을 올려주겠다는
타 후보와는 다르게
자신이 경험한 분유이야기를
했음에도 모든 부모들을
대변하는 격이 되어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그것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순수는 이렇듯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지만
평소 속물처럼
살아온 군상들에겐
감동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인생이
아무리 정치라고 하지만
인간 최후의 저지막인
진실 앞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눈물은 신이 내려주신
마음의 표백제다.
순수함을 경험하여
흘린 눈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은
맑아지고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現實)은 다르다.
우리 <댄싱 퀸>을 보면서
물론 영화 속 인물은 허구지만 실제로
황정민과 같은 인물이
한 번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대부분 했으리라.
그럼에도 한편으로
정말로 저런 사람이
서울시장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화는 스토리 구성 상
이렇게 바보같이 말해도 순수로
포장되어 전체적으로
훈훈하고 기분 좋은 말로 들리지만,
실제 그런 사람이
시장이 되도록 현실은 그냥 놔두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하고,
서민들의 가려운 등을 굵어주는
실제적인 말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아내와 사랑을
증명하므로 감동을 주었다고
시장이 된다면
이 시대 영웅은
어찌 보면 스타에 지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이 우릴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도대체 왜 이렇게
순수한 자들이 정치하기가 어려운가.
황정민 친구는
‘나도 세상을 바꿀 줄 알고
정치판에
들어왔는데 와서 보니
이들은 머리는 좋은데 가슴이 없어...’
이 말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정치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느 대통령이 생각났다.
그도 황정민 친구처럼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 했지만 진심의 의미를
갖고 쇼하기가 버거웠던
모양이었나 보다.
용평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느 학생이
초등학생까지 수표를
딱지 치기하듯 꺼내는 모습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끼며 괴로웠다는 말을 들었다.
이상과 현실은
이토록 다르단 말인가.
세상은 분명 정치적이지만
<댄싱 퀸>은
이분법적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애기하고 있기에
뛰는 가슴 속에 희망을 품을 수가 있었다.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가수의 꿈을 잊고 에어로빅 강사로
살았던 엄정화,
어느 날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딸의 말에 충격을 받고
가수의 꿈을 다시 확인하게 되고
슈퍼스타에 도전하지만
비웃음만 당하면서 좌절하지만,
어릴 적 가졌던
꿈같던 이야기들이 하나 하나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남편은
서울시장후보가 되었고,
어쩌다보니 아내는
댄스가수 꿈을 이루 수 있는 기회가 오면서
그들의 눈동자는 달라졌다.
마지막 드디어
원하는 꿈을 이루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엄정화를 보면서
극장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우리는 작가보다
더 빨리 다음 장면이 그려지는
영화임에도
끝까지 꿈을 쫓는 그들을 보면서
나의 꿈은 무엇인지
가족들의 꿈이 무엇이지를
되돌아보면서
진정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꿈을 갖고 있다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일에는
나이나 직위가 제한할 수 없다는 것과
어떤 꿈이든 존경해 주어야 함을
가슴깊이 새겨보게 되었다.
조심할 일은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별히 요즘 꿈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20대들이나,
현실이 너무 각박하여
내일에 대한 꿈이나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3, 40대들이 <댄싱 퀸>을 보면서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꾸길
기원해 보았다.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노래 가사는 하늘의
메시지같이 들렸다.
..
힘이 들땐 Call My Name!
주저 말고 Call My Name!
나만은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세상이 니 편이 아니래도 내가 옆에서 널 사랑해
힘이 들땐 Call My Name
..
주여,
아직도
제게 황정민 만큼의
순수함이
남아있는지 돌아보게 하소서.
말씀과 현실 속에서
저는 머리의 사람인지
가슴의 사람인지
정직하게
분별하게 하소서.
그리고
아직도 제게 꿈은 있는지,
있다면 꿈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게 하소서...
2012년 2월 10일(금)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올립니다.
◆클릭<호수와 세상사이에서>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