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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이 때론 더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친구 2007. 6. 2. 07:45
전기밥통  
 



우리 집에는 서른 살이 넘은
오래된 전기밥통이 있어요.
스위치를 꽂으면 전기가 들어온다는 표시로
빨간색 불이 켜져야 하는데 소식은 없고
밥을 퍼 넣기 전에 미리 보온을 눌러야하는,
그야말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밥통이죠.

몇 해 전, 수리하는 곳을 묻고 물어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주인아저씨께서는
"이것 그만 버리세요! 요즘 이런 전기밥통
이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고쳐봐야 쓰지도 않을 것을,
괜히 배보다 배꼽만 더 커요!"

흰색바탕이나 가냘픈 연분홍코스모스 무늬가
아이보리로 퇴색해버렸지만
그래도 사용 후 깨끗이 닦아
잘 보관해 놓았기 때문에 때나 먼지가
조금도 끼지 않아 겉보기에는 새 물건 같답니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75년 3월 29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토요일에
우리부부는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그 날, 여고시절에 삼총사라 불리며
많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명자, 숙례 두 친구가 축하한다면서
부피가 큰 누런 상자를 예식장으로 들고 왔지요.

아마 요즘 같아서는 귀찮다며 택배로 보낸다든가
간단히 현금으로 전달했을 겁니다.
하지만 두 친구는 맞벌이해야 할 나에게
가장 적당한 물건이라 고심 끝에 결정짓고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선물로
거금을 주고 구입했지요.

편하고 빠르게 모양도 예쁘고 기능도 다양한
각종 전기압력밥솥이 대량생산되어
'일제가 좋다, 미제가 더 좋다,
뭐라 해도 서비스 제때, 제때 잘 받으려면
국산이 최고다.' 라며
나 역시 압력밥솥이나 전기밥솥을 이용하고 있지만
밥알이 삭혀지는지 안 삭혀지는지
뚜껑을 열어 자주 확인해야하는
전기밥통을 결코 버릴 수가 없답니다.

우리부부의 결혼기념 나이와 똑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따스한 두 친구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출근 준비하느라 바빴던
신혼시절에 편리하게 따스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준 두 친구와의 잊을 수 없는
끈끈한 우정이 깊이 배여 있기 때문이랍니다.


- 이 계 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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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비까번쩍한 물건들보다
추억이 담긴 손때 묻은 물건들이
더 소중한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두고 가까이 함께할수록
더 아름다고 향기로운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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