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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서른 살이 넘은 오래된 전기밥통이 있어요. 스위치를 꽂으면 전기가 들어온다는 표시로 빨간색 불이 켜져야 하는데 소식은 없고 밥을 퍼 넣기 전에 미리 보온을 눌러야하는, 그야말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밥통이죠.
몇 해 전, 수리하는 곳을 묻고 물어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주인아저씨께서는 "이것 그만 버리세요! 요즘 이런 전기밥통 이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고쳐봐야 쓰지도 않을 것을, 괜히 배보다 배꼽만 더 커요!"
흰색바탕이나 가냘픈 연분홍코스모스 무늬가 아이보리로 퇴색해버렸지만 그래도 사용 후 깨끗이 닦아 잘 보관해 놓았기 때문에 때나 먼지가 조금도 끼지 않아 겉보기에는 새 물건 같답니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75년 3월 29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토요일에 우리부부는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그 날, 여고시절에 삼총사라 불리며 많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명자, 숙례 두 친구가 축하한다면서 부피가 큰 누런 상자를 예식장으로 들고 왔지요.
아마 요즘 같아서는 귀찮다며 택배로 보낸다든가 간단히 현금으로 전달했을 겁니다. 하지만 두 친구는 맞벌이해야 할 나에게 가장 적당한 물건이라 고심 끝에 결정짓고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선물로 거금을 주고 구입했지요.
편하고 빠르게 모양도 예쁘고 기능도 다양한 각종 전기압력밥솥이 대량생산되어 '일제가 좋다, 미제가 더 좋다, 뭐라 해도 서비스 제때, 제때 잘 받으려면 국산이 최고다.' 라며 나 역시 압력밥솥이나 전기밥솥을 이용하고 있지만 밥알이 삭혀지는지 안 삭혀지는지 뚜껑을 열어 자주 확인해야하는 전기밥통을 결코 버릴 수가 없답니다.
우리부부의 결혼기념 나이와 똑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따스한 두 친구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출근 준비하느라 바빴던 신혼시절에 편리하게 따스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준 두 친구와의 잊을 수 없는 끈끈한 우정이 깊이 배여 있기 때문이랍니다.
- 이 계 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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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비까번쩍한 물건들보다 추억이 담긴 손때 묻은 물건들이 더 소중한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두고 가까이 함께할수록 더 아름다고 향기로운 법이지요.

- 오래된 것이 때론 더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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