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반신"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슈라와 마리아는 샴쌍둥이 자매다. 언니 슈라의 장기에 의지해 사는 마리아는 예쁘다는 이유로 주변인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한다. 반면 못생긴 슈라는 "언니이니 양보하라"는 말만 들으며 분노를 안고 산다.
한몸에 서로 다른 주체가 있는 양면적 존재 샴쌍둥이는 '자아와 타자'라는 철학적 개념이 구체화된 대상이다. 내달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반신'(Half Gods)은 이 샴쌍둥이를 매개로 자아와 타자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명동예술극장과 공동 제작하는 '반신'은 '만화를 문학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하기오 모토(萩尾望都)의 단편만화가 원작이다. 현 도쿄예술극장 예술감독인 노다 히데키(野田秀樹)가 1986년 연출과 배우로 참여해 초연했고, 영국 에든버러 국제연극제에까지 진출해 연극적 유희와 넘치는 상상력을 선보였다.
한국 공연에 함께하고 있는 노다 연출은 26일 서울 중구 남산창작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늘 타인을 갈구하지만 반대로 혼자가 되고 싶어하는 역설적 욕망을 샴쌍둥이를 통해 표현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사람은 자아와 타자를 별로 인식하지 않고 삽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샴쌍둥이는 늘 자아와 타자를 인식하며 살아요. 상당히 보편성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공연해도 관객들이 잘 봐주실 거라 믿습니다."
이미 2005년 '빨간 도깨비', 지난해 '더 비'(THE BEE)로 한국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노다 연출은 장난기와 기발한 상상력 속에 철학적 깊이를 심는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반신' 역시 극중극 형식을 비롯해 시공간 이탈, 현실과 환상의 경계 등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할 수 있는 장치를 숱하게 내포하고 있다.
"즐겁게 느낄 수 있는 혼란이 있을 겁니다. 그건 그대로 즐겁게 혼란스러워하시면 되고요. 즐겁지 않은 혼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신체를 이용해 표현합니다. 그게 이 작품의 특징이죠. 뭔가 혼란스럽지만 이해는 되는 상태인 것 같은 느낌. 마치 앞면을 따라가다 보면 뒷면이 나오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혼란이죠."
난해한 장면을 배우들의 몸으로 표현할 일이 많은 탓에 한국 배우들에게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기도 하다.
노다 연출은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관념을 표현하는 역할로서 요물들이 등장하고 여기에는 당연히 신체가 필요하다"며 "신체 표현에 상당히 강한 한국 배우들에게 잘 맞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원작이 만화인 데다 워낙 상상력이 탁월한 연출의 지휘를 받다 보니 연습은 마치 놀이를 방불케 할 만큼 즐거운 시간이라고 배우들은 입을 모았다.
극중 초현실적 인물인 '인어' 역을 맡은 서주희는 "25년가량 연극을 했고 다른 외국 연출과도 작업해 봤는데 '연출자 한 명으로 이렇게 놀라운 작업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배우로서 나의 영감이 놀랍게 열리는 작업을 하면서 매일 '내일은 어떤 장면이 나올까' 기대할 만큼 흥미롭다"고 했다.
노다 연출은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 한일 공동작업으로 연극을 제작하는 데 대해 "연극인으로서 '연극은 정치보다 훨씬 오래됐고 강하다'는 신념이 있다"며 "연극이 정치 등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강해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는 그와 무관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