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숲을 거닐며 18]-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와 “초원의 빛”
명작의 숲을 거닐며 18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와 “초원의 빛”
-순수한 동심과 달관관조로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조신권(연세대 명예교수/총신대 초빙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근원과 방향은 서로 불가분으로 연관되는 개념들이다. 어린 아이가 강가에 서서, 도대체 어떤 힘이 저 영원한 흐름을 낳는 것일까 하고 골똘히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은 이러한 또 다른 의문으로 내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심연을 향해서 이 강물은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어떤 그릇이 저 강력한 유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 . . (그건) 한도가 없는 그릇이나 용적 - 무한 그 자체일 것이다. -『비문에 대한 글들』의 일절
Origin and tendency are notions inseparably co-relative. Never did a child stand by the side of a running stream, pondering within himself what power was the feeder of the perpetual current, from what never-wearied sources the body of water was supplied, but he must have been inevitably propelled to follow the question by another: 'Twards what abyss is it in progress? what respectable can contain the mighty influx?' . . . a respectable without bounds or dimensions ; - nothing less than infinity. - Essays upon Epitaphs
위에 든 명문은 영국의 19세시 낭만주의 시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비문에 대한 글들』(Essays upon Epitaph) 중에 나오는 사색과 곱씹음을 필요로 하는 한 구절이다. 먼저 윌리엄 워즈워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워즈워스의 생애와 작품
윌리엄 워즈워스는 1770년 4월 7일에 영국의 호반지대인 컴버랜드의 코커마우스에서 변호사 존 워즈워스의 다섯 자녀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8세 때에 어머니를, 그리고 13세 때 아버지를 잃게 되어 후견인의 손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는 그가 성장한 고장인 호수와 산세가 수려한 것으로 이름 높던 호반지대의 자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가 죽은 후 그는 초등학교 대신 호크쉐드(Hawkshead) 그래머스쿨에 들어가 어학수련과 기초 인문교육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메리 허친슨(Mary Hutchinson)을 만났는데, 후일 그의 아내가 된다. 그는 1787년에 첫 소네트를 썼고, 같은 해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1791년에 학사학위를 받고 호크쉐드로 돌아왔다.
한편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시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1789년)에 자극을 받아 인권운동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혁명의 현장을 몸소 살피고자 프랑스로 건너갔으나, 공포 정치의 현장을 목격하고 환멸을 느껴 우수와 오뇌의 나날을 보내다가, 드디어 그는 자연을 통해 그런 환멸로부터 구출될 수가 있었고, 그때부터 자연과 벗하며 시작에만 열중 몰입하게 되었다.
한편 오를레앙에서는 4년이나 연상인 프랑스 여성 마리 아네트 발롱(Marie Annette Vallon)을 사랑하게 되어 딸 카롤린(Carolyn)을 얻었다. 그는 아네트와 결혼하여 프랑스에 정착할 생각도 하였으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관계 악화로 말미암아 귀국을 강요당하게 되어 이 꿈은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영국에 돌아온 그는 친구가 준 유산의 덕으로 서부 영국에 정착하여 시를 쓰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1년 위인 그의 누이 도로시(Dorothy)가 살림을 돌보아 주었다.
1797년에 그는 새뮤얼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를 만나 서로 의기투합하게 되고 드디어는 그녀 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여 서머세트에서 살게 되었다. 이 세 사람은 오랫동안 단짝이 되어 어울려 살았으며 그 결과로 영국 시단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서정담시집』(Lyrical Ballads)을 1798년에 브리스틀에서 출판하게 된다. 이 시집은 18세기의 신고전주의 사조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 후 이 세 사람은 독일로 건너가 고스라르에서 지내다가 돌아와서는 고향 부근의 그래스미어에 집을 마련 이를 도우브 커티지(Dove Cottage)라 이름 짓고 정착하였다.
1800년에 ?서정담시집? 제2판을 출판하였는데, 여기에 유명한 서문이 게재되어 그의 뚜렷한 낭만주의 이론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1802년에 그는 허친슨(Mary Hutchinson)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얼마 있다가 콜리지와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둘은 크게 언쟁을 벌이게 되었고(1810), 그 이후 20년 간 서먹서먹하게 지내게 된다. 1843년에 로벗 사우디(Robert Southey)의 뒤를 이어 계관 시인이 되지만, 이때는 이미 그의 시의 샘이 마른 지 오래였고 1850년에 80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워즈워스는 『서정담시집』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출간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1805년에 출간된『은둔자』(The Recluse), 1814년에 출간된 『소요』(The Excursion), 1850년에 출간된 『서시』(The Prelude) 등이 있다. 여기서 다룰 시들은 다 『서정담시집』에 실려 있는 것들이다.
가슴 속의 작은 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 중의 하나가『리더스 다이제스트』다. 이 잡지는 역사도 유구하지만 좋은 내용을 가려서 싣는 교양지다. 이 잡지가 오래 전에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것이 바로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라는 헬렌 켈러의 작품이다. 시각과 청각의 중복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본보기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글 잘 쓰기로도 유명한 문필가였다.
“누구든 젊었을 때 며칠간만이라도 시력이나 청력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켈러는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계획표를 짠다. 방금 숲 속에서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뭐 특별한 것 본 것 없어”라고 답 하드라면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고 질문한다.
“보지 못하는 나는 촉감만으로도 나뭇잎 하나하나의 섬세한 균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 . 봄이면 혹시 동면에서 깨어나는 자연의 첫 징조, 새순이라도 만져질까 살며시 나뭇가지를 쓰다듬어 봅니다. 아주 재수가 좋으면 한껏 노래하는 새의 행복한 전율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으로 느끼는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하는 갈망에 사로잡힙니다. 촉감으로 그렇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꼭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이 제일보고 싶을지 생각해 봅니다.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헸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겠습니다. 찬란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그날 밤 아마 나는 잠을 자지 못할 겁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날 나는 . . . .” 이렇게 이어지는 켈러의 사흘간의 환상계획표는 그 갈증과 열망이 너무나 절절해서 멀쩡히 두 눈 뜨고 살며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가히 충격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헬렌 켈러가 평생 가슴 속에 품고 걸어간 작은 별은 ‘사흘만’이라도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 이런 열망으로써 그녀는 눈을 떠서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을 때를 대비해서 환상계획표까지 만들었지만, 평생 눈을 뜨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 뜬 사람 못지않게 촉감과 마음의 눈으로 아름다운 사물의 세계를 보았고 가슴 속에 떠 있는 작은 별인 꿈을 따라 걸어가서 훌륭한 사회적 성취를 이룩해 낸 사람이 되었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들어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그가 ‘숲가에 왔을 때, 즉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집요하게 숲으로 들어와 편하게 노래하라는 티티새의 노랫소리(유혹 또는 유인)가 있었으나 밖에서 별을 보기 위하여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였다’고 하였다. 그가 만일 ‘별’로 표상되는 이상이나 꿈을 바라보지 않고 안일만 바라보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면 오늘에 길이 남을만한 불멸의 시를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남긴 말들 중의 가장 인상적인 것은 “평생 산다는 것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지독한 가난과 처절한 고독, 자살까지 끌고 갈 만한 절박한 정신질환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식히지 않고 작업한 결과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을 남길 수 있었다. 평생 가슴속의 꿈을 향해 걸어가게 한 그의 별은 ‘명화’ 만들기에 대한 열정과 이상이었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평생 향해서 걸어간 별은 ‘무지개’를 볼 때 어릴 때처럼 죽을 때까지 가슴 뛰는 것이었다. “하늘에 무지개 바라보면/내 가슴 뛰노라./내 목숨 시작될 때 그러했고/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니/늙어서도 그러하리라./아니라면 죽음만도 못하리!/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원컨대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자연에 대한 경애로 이어지기를.”(무지개 전문). 그래서 평생 그는 동심을 잃지 않고 생명의 근원과 향방을 물으며 살았고, 존재가 생겨나고 돌아가는 무한의 생명바다 안에서 인생의 유입(流入)을 바라보며 겪고 느낀 그 인생체험을 담은 감동적인 시들을 많이 남길 수가 있었다.
오월을 맞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한 선배로서 ‘가슴 속에 한 작은 별’을 가지라는 말을 주고 싶다. 워즈워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지개나 혹은 그 어떤 작은 것들 속에서도 그 스며져 있는 보배와 같은 신비와 가치 있는 의미를 찾아볼 뿐 아니라, 그것을 볼 때마다 가슴 두근두근 거리고 뜨거워지는 감동체험이 있기를 바란다. 젊었을 때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인생을, 자연을, 가족을, 그리고 내 겨레와 조국을 사랑할 때, 어떤 경우에도, 고동치는 가슴과 식지 않는 열정, 그리고 끊임없이 꿈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고 하기를 바란다. 어려움과 역경이 닥칠 때 주저앉지 말고 부닥쳐나가는 도전정신과 역경을 뒤집는 용기와 인내를 가졌으면 좋겠다. 너무 쉽고 가볍게 인생을 보지도 말고 사소한 것에 얽매여 전전긍긍하지도 말며, 새로운 것과 새로운 세계를 향해 뛰쳐나가는 구동력과 정글의 미로를 헤쳐 나가는 역량과 모험정신을 갖기 바란다. 그것이 워즈워스가 ‘무지개’를 보았을 때 가슴이 뛰었던 그런 정신이다. 가슴이 뛰는 것은 목숨이 시작할 때도, 어른이 되었어도, 늙어서도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 일관성이요 성실성이다. 이런 정신이 어릴 때부터 양육되고 익숙해져야 어른이 되었을 때도 자연의 경건함과 신앙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은 너무 단절되고 해체되었으며, 지나치게 감각화되고 파편화되어 통합의 신비와 감동을 맛볼 수가 없다. 다양한 것은 좋지만 다양성 속의 합일은 더욱 충격적이고 전율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야드 키플링은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라고 했다. 나의 사랑하는 학생들과 청년들, 그대들의 아름다운 신념, 그대들의 펄펄 끓는 열정과 꿈, 태산이라도 뒤엎을 것 같은 야망으로써 이 세상의 어둠을 갈아엎고, 찡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함박웃음과 소망과 광명을 주기 바란다. 항상 꿈을 불태우며, 가슴 두근거리는 감동과 웃음을 만들어 가면, 그대들의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고 파란 새날의 동은 터올 것이다.
바다 건너편을 바라보며
위에 든 명문을 보면 어린 아이가 강가에 서서 ‘내가 어디서 왔을까’라는 근원과 ‘나는 어디로 갈까’라는 훗날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 아이는 나이가 적은 아이가 아니라 순수한 동심과 영적 투시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나이가 들었어도 어린 아이처럼 순수무구한 사람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을 보면서 생명의 근원과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 되면 젊은이 같은 육체의 노래를 불러서도 안 되고 자기의 정체성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세속의 탁류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서도 안 된다. 가을에는 가을의 노래가 있고 겨울에는 겨울찬가로서 ‘나목의 노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의 노래요 근원의 노래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사소하고 가치 없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넓게 멀리 살피며 바다 이편이 아니라 저편을 바라다보며 살게 된다. 이렇게 달관과 관조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청춘의 계절이 지나갔어도 애타하거나 초조해지지 않으며 불안해지지도 않는다. 초원의 빛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지만 언제나 누구에게나 없을 수도 있다. 초원이 빛이 사라져도 다른 근원적이고 본원적인 것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면 된다. 워즈워스는 그런 달관된 예지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한때 그처럼 찬란했던 광채가/이제 내 눈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한들 어떠랴/초원의 빛, 꽃의 영광 어린 시간을/그 어떤 것도 되불러올 수 없다 한들 어떠랴/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본원적인 공감에서/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나/마음을 달래주는 생각에서/죽음 너머를 보는 신앙에서/그리고 지혜로운 정신을 가져다주는 세월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영생불멸을 깨닫는 노래” 중 일부)
세상 모든 것은 흘러간다. 이 흘러가는 모든 것에 집착하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며 관조하면서 저 바다 건너편을 향해 걸어가기를 바란다. 지나간 것에 대해 너무 집착하면 좀스러워진다. 좀은 작아서 보이지도 않지만 좀 먹어서 옷 같이 유익한 것이 못 쓰게 되기도 한다. 자꾸 뒤를 돌아다보면 소돔 성을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본원적인 공감에서,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나 마음을 달래주는 생각에서, 죽음 너머를 보는 신앙에서, 그리고 지혜로운 정신을 가져다주는 세월에서 힘을 찾아 살아야 한다.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 그 어떤 것도 되불러올 수는 없다. 흘려간 세류의 비탈을 달려가며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바다를 저어 건너갈 배를 준비하여야 한다. 그 배의 노는 우리가 잡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저 바다를 잘 건너가면, 바로 거기서 이 세상과는 딴판으로 다른 초원을 만나게 되고 더욱 찬란한 광휘와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