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충격 받은 열정'으로 살아가십니까?
아름다운친구
2007. 5. 22. 05:08
 |
2007년 5월 22일 화요일 '충격 받은 열정'으로 살아가십니까?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 |
탕자의 귀향을 묘사하는 이 구절을 그린 렘브란트의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탕자의 귀향>이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다가 어느 날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에서 일하면서 그 사람들을 돌보고 살았던 가톨릭 사제였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이 그림을 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그림은 나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설 수 있는 신비의 창이 되었다.” 나우웬은 이 그림에 감명을 받아서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에 가서 원본 그림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네 시간을 꼬박 앉아서 그림을 보고 듣고 마음에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가 하는 말을 켄 가이어의 『영혼의 창』에서 옮겨봅니다.
“… 그 웅장한 아름다움에 나는 넋을 잃었다. … 네 명의 미지의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아버지와 아들의 빛에 싸인 포옹. 이 모든 것이 생각보다 훨씬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 렘브란트의 포옹은 그 어떤 정서적 지지의 일시적 표현보다도 훨씬 깊게 내 영혼에 각인되었다. 그것은 나를, 분주한 삶의 기복 밑바닥에 숨은 내 내면의 뭔가에 가 닿게 해주었다. 인간 영혼의 끊임없는 갈망, 즉 마지막 귀향, 확고부동한 안전감, 영원한 본향에 대한 갈망과도 같은 그 무엇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많은 문제에 얽혀 많은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바쁜 나, 탕자의 귀향은 그런 나를 떠나지 않았고 내 영적 생활에 갈수록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 ”
이 그림에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받은 헨리 나우웬은 하바드 대학 교수직이라는 명예와 부를 버리고 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사람들을 섬기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기자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질문했다고 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대답했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예수님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 내리막길을 가다보니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에서 좀 보고 들어야 할 말씀(과 또 다른 충격)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충격 받은 열정’으로 평생 헌신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주님께 헌신한 사람들의 삶 속에는 남다른 선택을 한 계기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게도 인생을 송두리째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충격을 주시옵소서.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 그 자체가 의미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기 원합니다. |
By 원용일 목사 |
 |
2007년 5월 22일 하나’의 힘 |
 |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
|
|
 |
|
과일 주스를 증류하면 알코올이 남습니다. 죽인 짐승의 내장을 제거한 몸통을 발라내면 결국 뼈가 남습니다. 향수에서 정수(精髓)를 뽑아내면 하나의 강력한 농축 향료를 얻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요약하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신학자 한스 큉(Hans Kueng)에 의하면, 기독교 2,000년의 요약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스 큉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비인격적(非人格的)인 관념, 추상적 원리, 보편적 규범, 순전히 개념적인 사상 체계에 의하여 일어서거나 넘어지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삶의 길을 제시한 구체적 인간, 즉 나사렛 예수에 의하여 일어서거나 넘어집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아무리 경건해진다 할지라도, 그들의 신학 체계가 아무리 복잡해진다 할지라도, 그들의 경건과 신학의 핵심은 구체적 인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0년 동안 기독교에 대하여 논쟁이 벌어졌고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자기 정체성(正體性)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는 매력적인 종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21세기에 기독교가 제시해야 할 것은 어떤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
|
 |
|
당신은 영적인 투자를 어디에다 더 많이 합니까? 기독교의 이론이나 학설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
|
|
 |
|
“주여! 주님만이 모든 인간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께 나아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것이 주님의 아름다움을 흉내낼 수 있겠습니까? 온유한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강한 팔로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 주님만이 언제나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