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기다렸다가 말하는 지혜

아름다운친구 2007. 4. 21. 07:20

2007년 4월 21일 토요일
기다렸다가 말하는 지혜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 (에스더 5:3-4)

  같은 말도 기분이 좋을 때하면 쉽게 전달이 되는데 때를 잘 못 맞추어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느냐에 신경을 쓰는 만큼 같은 말을 어떤 태도로, 언제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언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윗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를 피하면서 눈치를 보는 것도 일종의 지혜입니다. 윗사람이 지시를 할 때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시하기 좋은 때를 찾아야 효과를 얻기에 좋습니다.

  페르시아의 왕비였던 에스더가 왕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과정에서도 의사소통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 것이고 민족을 몰살의 위기로부터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총리였던 하만이 유다 민족을 죽이려고 하니까 그의 흉계를 왕이 파악하여 자신과 민족을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꼭 전해야 했습니다. 에스더가 만일 왕을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하만의 또 다른 음모로 인해 일?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왕후였던 에스더의 지위나 생명까지도 위협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조금 기다려서 했습니다. 먼저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해서 분위기를 잡으면서 왕의 마음을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결정적인 순간, 왕이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한 번 더 참으면서 다음 날 왕과 하만을 다시 초대한다고 했고 또 한 번 결정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왕에게 본래 하려던 말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왕을 설득해서 민족의 원수였던 하만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옳은 말을 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것을 하기 위한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할 때도 지혜가 필요하지만 특히 일터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이렇게 기다렸다가 말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용이 같은 말도 언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잘 압니다. 기다렸다가 말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By 방선기 목사

2007년 4월 21일
너는 무죄!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 30:11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하나님은 슬퍼하는 자들이 상복을 벗고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류 상표명-역자 주)으로 갈아입은 후에 줄을 지어 춤추게 하십니다.

그 분은 단지 우리의 부끄러움을 제거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우리를 천국의 소매점으로 데리고 가서 파티용 의복을 새것으로 사주십니다. 그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게 하십니다. 그 미소는 당신의 온 몸으로 퍼져나가 당신으로 하여금 춤추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분입니다. 그 분은 완전히 용서하시고 우리의 수치심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완벽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죄와 수치로 물든 우리의 옷에 그 분의 ‘얼룩 제거제’를 발라주십니다. 그 분은 고통과 실패의 눈물 자국을 모두 씻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에 근거하여 그 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의 더러운 것들을 씻고 또 씻어 주십니다.

성경은 종종 찬양도 제사라고 말합니다. 사실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진정한 경배의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자유를 느낄 것입니다. 물론 그 자유는 고통을 모른 체 하는 자유는 아닙니다. 다만 고통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다시 미소지으며 춤을 추며 과거를 잊어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또한 그 자유는 머리를 높이 들고 당당하게 다시 걸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이런 자유 속에서 당신은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이 당신에 대해 “너는 무죄이다”라고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빙 벌린(Irving Berlin:1888-1989. 러시아계 미국의 작사작곡가로서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역자 주)의 1936년 노래가 최근 TV의 생명보험 광고 때문에 다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생명보험 광고의 말이 ‘거의 거룩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것이 좋습니다. “당신의 앞길에 고난이 있을지 모르지만, 달빛과 사랑과 로맨스가 있다면 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춥시다”
누구나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 있도록 본문을 옮겨 봅시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큰 통곡을 신바람 나는 춤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이 탄식으로 얼룩진 검은 머리띠를 떼어 내시고 대신 야생초로 장식해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십시오.

인생
주제어 : 소망, 시간
2006-04-21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어떤 대단한 성과나 성취를 하여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욕구를 다 갖고 있다.

 

때로는 단지 내 이름을 남기는 일이 아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을만한 그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욕심을 갖는다.

 

다섯 달란트는 아니더라도 대충 두 세 달란트 쯤은 남기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미스 코리아나 방송 연예인 대상에서 상을 타는 사람들처럼

 

사람들 앞에서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것보다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성과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와 방향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