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당신은 예수 믿지 않으니 나 대신 사세요.”

아름다운친구 2007. 4. 11. 07:51

2007년 4월 10일 화요일
“당신은 예수 믿지 않으니 나 대신 사세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2)

  전도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전도를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직장생활 하기도 벅찬 데 전도를 어떻게 하는가 의아해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쓰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려면 늘 전도해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음에 부담을 가지고 언제나 전도하는 훈련을 해야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때 군함이 파선해 바다로 뛰어든 영국 병사가 널빤지 하나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에 떠 있던 동료 병사를 만나 함께 널빤지를 붙잡았지만 널빤지는 둘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는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니 천국에 가겠지만, 당신은 아직 믿지 않은 모양이니 당신도 예수를 믿어 나중에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그 병사는 널빤지를 놓고 물속으로 빠졌습니다. 그렇게 건네받은 널빤지를 의지해서 살아난 ? 옆?병사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도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설교자 존 하퍼 목사가 시카고의 무디 교회에서 설교하기 위해 그 유명한 유람선 타이타닉 호를 탔다가 파선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구명대도 없이 바다에 떨어진 하퍼 목사는 안간힘을 쓰면서 바다로 떠다니다가 널빤지 조각에 의지해 있는 청년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외쳤습니다. “젊은이, 구원받았는가?” 청년은 아니라고 대답했고 몇 분 후 다시금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하퍼 목사는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쳐 물었습니다. “자네 하나님과 화해했나?” 그 때 큰 파도가 하퍼 목사를 삼켰습니다. 2주일 후 어느 저녁에 뉴욕에서 열린 기독청년집회에서 한 젊은이가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존 하퍼 목사님의 마지막 전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일터에서 상황이 쉽지 않아도 전도자로 살게 하옵소서. 입을 열어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고 삶으로, 일로, 관계로 전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By 원용일 목사

2007년 4월 10일
고통의 순간에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요 20:11,16

몇 년 전에 나는 아주 이른 아침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의 형제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배어있었고,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의 몇 초 동안은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소식은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감당할 수 있습니까? 제가 극복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이길 수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왜 그 분입니까? 아주 젊으십니다. 너무 젊으십니다. 작별 인사도 못했습니다. 나는 견딜 수 없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 분을 잃어버리다니... 그 분 없이 저는 살 수 없습니다. 오 하나님, 그 분이 얼마나 재미있는 분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분은 우리 집의 기둥이십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분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그 분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그때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미칠 것 같은 그 순간에 그분은 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빠가 안전하다고, 즉 예수님과 함께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마음은 완전히 조각조각 부수어졌지만, 나의 영혼은 평안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때로는 절망적일 정도로 힘듭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고통스런 순간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분은 그 순간에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고통을 이해해주십니다.
주 예수님, 슬픔을 이길 수 있는 묘안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런 묘안은 없다는 것을. 고통의 순간에 주님이 저를 개인적으로 위로해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