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극한 고통이 낳은 부활 신앙

아름다운친구 2007. 4. 7. 05:08

2007년 4월 7일 토요일
극한 고통이 낳은 부활 신앙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9)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극한 고통의 경험이 있습니까? 평생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당신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그 고통이 부활 신앙의 모태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겪는 고통은 그저 견디다가 이겨내면 뿌듯한 것만은 아닙니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이 열거하는 여러 가지 고통의 목록을 보면 그가 겪은 고통의 순간은 그리스도로 인해 극한의 고통을 겪은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서 말하는 아시아에서 당한 고통도 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평소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며 때로 무례하게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존심도 잊어버리고 죽고 싶었다는 약점 잡힐 말을 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이 심해서 살 수 있겠다는 소망이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았다고 그 때의 심경을 말합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로 인해 당하는 극한의 고통이 새로운 체험을 하게 ! 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존재란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부활의 신앙을 얻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을 살려낼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일터 속에서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가져야 할 부활 체험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겪었던 고통 속의 부활 신앙을 일터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고통이 주는 유익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부활의 신앙을 배우게 하옵소서.
By 원용일 목사

2007년 4월 7일
한계를 모르는 용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2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신다고 할 때 그분의 자비에는 양적(量的)인 차원뿐만 아니라 질적(質的)인 차원도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분은 우리의 많은 죄들을 용서해주시지만, 또한 우리의 많은 종류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죄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저질러지는 죄들입니다. 즉 그것들이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반역의 행위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이 생각하기에, 죄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가 ‘의무 불이행(不履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을 이행하지 못할 때마다 그분 앞에서 우리의 빚(죄)이 쌓여갑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그분을 실망시킬 때마다 우리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이런 깊은 차원의 정의(定義)를 우리에게 빚진 자들에게 적용시켜봅시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특정한 형태의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실망시킨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우리가 느끼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해야 합니다. 이렇게 용서할 때마다 우리는 얕은 차원의 용서밖에 모르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영(靈)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를 실망시킨 사람들에게까지 우리의 용서의 폭을 넓힌다면 우리의 ‘용서할 사람들의 목록’은 그만큼 더 길어질 것입니다. 이 목록의 이름들이 많아질수록, 용서의 기회도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단지 저를 실망시킨 사람까지도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용서의 폭을 넓히게 도우소서. 아무리 용서의 시간이 길어진다 할지라도 전부 용서하게 하소서.

뒤늦게
주제어 : 은혜, 섭리, 회계, 지혜
2006-04-07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미리 깨닫지 못한다.

 

늘 늦게서야 깨닫곤 회개하며 감사한다.

 

우리가 그렇게 늦게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은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시며 가슴 조리실 게 틀림 없다.

 

왜 우리는 그렇게도 하나님을 힘들게 할까....

 

그래, 늦게 깨닫는 거야 우리의 지혜가 부족한 탓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제발 너무 늦게 깨닫진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