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안에서♡/말씀...오늘의 묵상

당신의 비즈니스 성공 모델이 있습니까?

아름다운친구 2006. 12. 8. 06:29

2006년 12월 8일 금요일
당신의 비즈니스 성공 모델이 있습니까?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26:19-22)

서점에 가면 비즈니스 성공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골라잡아 읽기도 부담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을까?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고민 하시지 않습니까? 그럼 과연 성경은 비즈니스의 성공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까요? 이삭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그랄 땅에 들어가 살던 객지 사람 이삭은 농사를 지어 큰 수확을 거두었고 토착민들의 시기를 유발했습니다. 그래 그들은 이삭의 선친 때부터 소유했던 우물들을 메워버리고 아예 쫓아내었습니다. 골짜기로 내몰린 이삭은 선친 때에 사용했으나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린 우물을 다시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토착민들은 그 우물이 자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또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그 우물 이름을 에섹(다툼의 우물)이라고 하고 물러났습니다. 다른 곳에 우물을 팠더니 토착민들이 또 덤볐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을 싯나(적대의 우물)라 하고 물러났습니다. 또 옮겨가서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더 이상 토착민들이 덤비지 않았습니다.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충분히 넓은 우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의 투쟁에서 과연 누가 성공했습니까? 남의 우물을 계속해서 빼앗은 그랄 사람들입니까? 남의 우물을 빼앗은 사람들이 얻은 비즈니스 지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지금 당장 성공해 보이는 사람은 누구고 1년 후, 5년 후, 10년 후에 성공할 사람은 누구란 말입니까? 에섹 모델, 싯나 모델, 르호봇 모델, 각각 다른 환경 속 세 군데에서 물을 얻어낸 지식을 가지고 이삭이 어디로 간들 성공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실패해보이는 성공 비즈니스가 바로 우리 크리스천의 비즈니스 방법입니다.


크리스천다운 비즈니스 성공모델을 가지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시오.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By 원용일 목사

2006년 12월 8일
문화와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시 67:7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하여 ‘강한 자들’을 선택할 때 그들 중에는 병사와 용감한 전사들 외에도 200명의 미래학자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미래학자들은 시대의 흐름을 알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최근에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여러 국가들과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고 가상(假想)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국가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향후 10년의 기간을 가상 현실로 설정해놓고 그를 관찰하면서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미래의 전략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는 가상 현실 속에서 회의(會議)도 주재하고, 미래의 생활과 일의 패턴에 대하여 회사들에게 조언하고, 그에 대하여 보수를 받기도 합니다.

만일 교회가 시대의 흐름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제의 문제에 대하여 답을 하려고 애쓰느라고 오늘의 문제를 놓치고 맙니다. 우리가 국가에 대하여 선지자의 역할을 하려면, 시세(時勢)를 아는 잇사갈 자손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때때로 기독교 방송 대신에 대중 가요를 들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일간 신문을 사서 읽고 우리 지역의 정치적 문제들에 개입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 주변의 문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서도 그것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는 딜레마에 날마다 빠집니까? 어떤 점에서 세상과 담쌓고 도피적으로 삽니까? 반대로, 어떤 점에서 세상과 타협하면서 삽니까?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피 흘리는 전쟁과 같습니다. 누구도 이 전쟁의 최전선에서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종종 나는 “예수님의 진리를 우리의 문화에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언제나 우리의 세계에 적용되어왔습니다. 현명하게도, 교회는 '조직화된 종교'를 통해 예수님의 진리를 문화에 적용해왔습니다.
과거의 유명한 한 교회 지도자가 말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적용합니다.” 그러므로 신문과 성경을 잡고 그 둘을 행동으로 옮기십시오.